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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숭고한 사랑에 대해 / 이지현

등록 2013-07-14 19:18수정 2013-07-14 23:38

이지현 영화평론가
이지현 영화평론가
지난 8일 영국의 <비비시>(BBC) 방송은 자라 필립스 공주의 임신 소식을 전했다. 출산을 앞둔 미들턴 왕세손비 뉴스와 더불어, 이는 자국민들에게 기쁨을 주는 듯 보인다. 하지만 다이애나비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대중들은 귀족들의 사랑이라고 완벽하리라 여기지는 않는다. 필립스 역시 신혼 시절 가십에 오른 적이 있다. 럭비선수인 남편 틴들이 옛 연인과 만난 사실이 발각된 것이다. 하지만 이 스캔들은 무마됐고, 대중들은 여전히 그들에게서 사랑의 아우라를 발견하려 애쓴다. 이유는 간단하다. 왕족의 이미지가 나라를 대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든 사랑의 이야기는 아이러니한 핍박의 형태를 동반한다. 불안정한 것을 안정된 것으로 선언하는 데 사랑만큼 유용한 도구도 없다. ‘운명’이나 ‘신탁’ 등의 용어까지 사용하며, 사랑은 괴물과도 같은 역설들을 행운으로 바꾸는 괴력을 보인다. 일부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보이지 않는 욕망의 표상’이라 칭했고, 사회학자들은 ‘상징의 코드’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 사회적 상징들은 시대를 따라 변화한다. 한때 프랑스인들의 ‘열정적 사랑’이 진정한 사랑의 형태로 취급받았다면 ‘청교도들의 동반자적 관계’가 의미 있다고 언급된 시기도 있다. 비개연적 상황을 잇는 이 코드들 덕분에, 사람들은 사랑하는 감정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코드에 대한 해석은 시대를 조망하는 열쇠가 될 것이기에 의미 있다.

올해 상반기 연예계에선 유난히 많은 열애설이 들렸다. 재미있는 점은 이 와중에 대한민국의 모든 큐피드들이 의심을 받고 있단 사실이다. 일종의 징후처럼, 유명인의 열애에는 사회적이거나 개인적인 음모론이 뒤따른다. 얼마 전 들었던 원빈과 이나영의 열애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중들은 쉽게 이를 받아들였지만, 그럼에도 의심의 눈초리만은 거두지 않았다. 두 사람의 비등한 아름다움이 수긍의 이유였다면, 이 개연성은 동시에 의심의 연유가 되기도 했다. 도무지 불균형한 관계를 찾을 수 없었던 탓이다. 몇몇 트위터 이용자들은 이를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음모론’으로 몰았다. 새삼스런 의혹은 아니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는 모든 사태를 의심하는 습성을 익혔다.

예전 <러브 픽션>을 준비하던 전계수 감독과 우연찮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그에게 어떤 것에 감동을 받는지에 관해 물었는데, 내심 당연히 사랑에 관한 답을 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가 ‘높거나 거대한 건축물’에 마음이 움직인다고 대답해 나는 좀 놀랐다. 니체에 따르면 큰 것에는 숭고한 아름다움이 담긴다. 마음 역시 숭고한 마음들이 있다. 종종 이성적 사랑은 숭고한 사랑과 동등한 것으로 취급받는데, 희곡작가 부르소에 따르면 ‘의무’보다 더 사랑과 흡사한 것은 없다고 한다. 그러니 ‘신’을 향한 애정이나 ‘국가’를 향한 마음 또한 숭고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애국심에 대해 강하게 피력한 적 있다. 그의 연설을 들으며 나는 그 마음의 원천이 가족사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별개의 애정인지가 궁금해졌다. 최근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서, 혹여 그가 전자와 가깝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에 이은 북방한계선과 관련된 행보는 결과적으로 숭고한 애국심과 연결 짓기 어려워 보인다. 올바른 정부라면 적어도 국민들의 숭고한 충성심을 이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숭고한 마음, 그 본질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시기이다.

이지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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