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부근의 산길을 가다 보면 노란색 비닐을 감은 나무들을 볼 수 있다. 나무를 잘라 쌓아놓고 비닐로 덮어놓은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참나무시듦병 때문이다. 이 병은 2004년에 경기도 성남·광주·여주, 강원도 철원·화천 등에서 발생했다. 이후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번져 한해 수만~수십만 그루가 피해를 봤다. 지난해 북한산과 도봉산에서만 7만5천 그루 이상에 대해 조처를 취했을 정도로 전파력이 왕성하다.
이 병은 광릉긴나무좀이라는 벌레가 옮기는 라펠리아라는 곰팡이균이 번식하면서 생긴다. 물과 양분이 올라가는 물관을 막아서 나무를 말라 죽게 만드는 것이다. 참나무 가운데서도 추위에 강한 신갈나무가 잘 걸리는데,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고 강수량도 늘면서 병충해에 약해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큰 나무의 밑동을 주로 공격했지만 최근에는 작은 나무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광릉긴나무좀은 나무 속에서 월동한 뒤 5월쯤에 다른 나무로 들어가 알을 낳는다. 이들이 활발하게 번식하는 7~8월에 나무는 빠른 속도로 말라 죽는다. 나무 속에서 자라는 탓에 방제가 쉽지 않다. 그래서 증상이 나타나는 나무를 잘라내거나 비닐을 감아 확산을 막는 방식으로 사후 대처를 해왔다. 천적을 활용하는 게 좋은 대안이지만, 이 병 자체가 기후변화로 천적이 바뀌면서 번진 것이어서 새 천적이 생기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 다행히 국립산림과학원은 올봄부터 광릉긴나무좀의 주광성(빛을 좋아하는 성질)을 이용해 포획하는 장치를 개발해 보급하기 시작했다. 시범연구에선 한 나무에서 1만5천 마리까지 잡아냈다고 한다.
근본적인 해법은 나무가 스스로 저항력을 갖는 것이다. 이미 10년 가까이 지났으므로 곧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나무는 식물 가운데 가장 진화가 진전된 생명체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적응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진화는 과학보다 강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과학(사람)의 구실이 더 클 수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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