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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과대 해석 금지 조항 / 이지현

등록 2013-08-11 18:10수정 2013-08-11 20:51

이지현 영화평론가
이지현 영화평론가
영화 <퍼시픽 림>에서 괴물 카이주는 심해로부터 등장한다. 정확히는 환태평양 대륙판들 사이의 구멍이라는데, 이 이야길 듣자 문득 스노든의 지구공동설에 대한 폭로가 떠올랐다. 우연의 일치지 싶다. 연출자 기예르모 델 토로가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진 시기가 2010년 즈음이라니 말이다. 하지만 루터의 성서 번역이 독일의 인쇄술 발달과 맞물렸던 것처럼, 역사를 돌이켜 보면 많은 우연들이 후에 필연이라 이야기되기도 한다. 사건을 결합시키는 주체는 ‘우리’이고, 우리의 관점들이 새로운 해석을 낳는다. 때문에 전체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신경을 곤두세운다. 데카르트 이후 줄곧 그래 왔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영화 <설국열차>를 보기 전 언뜻 보았던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 제목 탓이다. 감독이 직접 ‘노골적인 정치영화’라 언급했단 내용이었는데, 애초 이런 타이틀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극장에 앉은 내내 고민하게 됐다. 과연 이 영화가 정치영화인지, 그리고 몇몇 사람이 경계하는 것처럼 영화를 확장 해석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지 말이다.

만일 ‘정치’란 단어의 사용을 망설인다 하더라도 <설국열차>가 ‘인류에 대한 우화’라는 걸 받아들이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알레고리’가 주는 함의처럼, 극의 내용 자체가 꽤 노골적이다. 뒤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의 방향성이 그렇고, 영화 속 캐릭터들이 행하는 사건이 혁명인 것도 그렇다. 그렇지만 예컨대 <더 테러 라이브>에서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셔야 합니다”란 대사가 주는 직접성이 이 영화에는 없다. 홀로 해석 가능한 상징과 다르게, <설국열차> 속 우의는 의미작용을 거친 후에야 이해되는 성질의 것이다. 그래서 영화관을 나온 뒤에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극이 완결된 하나가 아니라, 자꾸 무언가를 생각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봉준호의 이번 영화는 개별 속에서 보편을 찾는 상징적 구상이 아니라, 보편을 겨냥해 개별을 드러내는 우의에 가깝게 설계됐다. 이때 개별은 우리 사회의 지배층이 도달하고 싶어하는 ‘완벽한 통제에 대한 욕구’일 수도 있고, 세계적으로 위태롭게 굴러가고 있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다. 어느 것이라 단정하진 못하지만 분명한 건 이 영화가 정치적 맥락에서의 해석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인 노발리스는 말했다. 필연적으로 역사가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그에 따르면 시인들은 용케도 사실들을 이어 맞추는 일에 정통한 자들이다. 같은 맥락에서 봉준호를 문학적 견지의 예술가라 칭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지닌 상업적이고 장르적인 장점 탓에 일부 시학적 성취들이 가려진 부분이 있지만 말이다. 그 탓인지 몰라도 영화를 본 관객들의 평가는 양분되는 추세다. 영화에 대한 가혹한 반대에서부터, 양갱을 손에 들고 다시 극장을 찾는 이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러고 보면 올해 여름은 유독 수작이 많았다. 프랑수아 오종의 <인 더 하우스>도 그렇고,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마스터>도 말 그대로 마스터피스답다. 김병우의 <더 테러 라이브> 역시 오랜만에 만나는 호기로운 데뷔작이다. 하지만 막상 <설국열차>를 보고 나오면서 드는 생각은 이들 간 대립이 시스템적 기제가 아닐까란 의심이었다. 물론 과대망상이다.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건 딱 알레고리까지이니 말이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달린 ‘과대 불판 금지’ 문구가 떠오른다. 그 이상의 해석을 붙이는 건 폭발을 부를 수 있으니 위험하다.

이지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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