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해보다 무더운 여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뜨겁고 두려웠던 여름은 1950년 한국전쟁 초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전세를 뒤집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특히 미군의 주력 폭격기인 B-29의 활약은 눈부셨다.(<폭격>)
B-29의 대량 폭격은 북한 지역 사람들뿐만 아니라 38선 이남의 북한군과 남한 주민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50년 7월8일 창설된 미국 극동공군 폭격기사령부의 조지 스트레이트마이어 사령관은 7월11일 북한지역 임무 수행을 명령한 데 이어 다음날 남한지역 전술공군작전을 지시했다. 교량 파괴 등에 쓰여야 할 B-29가 지상군 근접지원작전에 대거 동원됐다. 작전이 절정에 이른 시기는 8월 중순이었다. 8월16일 98대의 B-29가 경북 왜관지역에 3084발의 225㎏ 파괴폭탄과 150개의 450㎏ 파괴폭탄을 투하했다. 2차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래 최대의 폭격작전이었다. 폭격은 경북 안동·성주·의성·고령·상주·김천, 경남 합천, 대구, 충북 영동·제천, 대전 등에서도 이뤄졌다. 서울 용산의 철도시설에는 225㎏ 파괴폭탄 1504발이 투하됐다.
무차별 폭격은 많은 민간인 피해를 낳았다. 이는 B-29의 높은 오폭률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미군의 실험 결과 6.096m(폭)×152.4m(높이)의 목표물에 대한 개별폭탄적중률(폭탄 하나를 투하했을 경우 맞을 확률)은 0.7%에 불과했다. 9월28일 서울 수복 직후 정부의 공보처 통계국은 6월25일부터 그때까지 서울지역 사망자 수를 조사했다. 공중폭격(4250명)이 가장 많았고, 이어 총격·포격(2378명), 피살(1721명), 화재(445명) 차례였다. 민간인 피해의 최대 원인은 B-29 폭격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부수적 피해(‘정당한 군사목표가 아닌 사람이나 사물들에 대해 비의도적 또는 우발적으로 입힌 상해나 손해’를 뜻하는 미군의 공식 군사용어)로만 규정된다. 적어도 수십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민간인 사망자들도 마찬가지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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