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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박원순의 ‘착한 행정’ / 백기철

등록 2013-08-20 18:33

백기철 논설위원
백기철 논설위원
이달 초 새누리당 인사들이 서울시청으로 몰려가 서울시의 잇단 안전사고에 대해 거칠게 항의했다. 노량진 배수지 사고와 방화대교 사고의 책임이 박원순 시장에게 있다는 추궁이었다. 인명을 앗아간 안전사고가 잇따른 데 대해 박 시장과 서울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여당 국회의원들이 안전사고를 문제 삼아 서울시로 몰려가 항의집회까지 연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흔치 않은 이런 풍경은 거꾸로 박 시장에 대한 여당의 경계심이 상당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선 향방을 점치기는 이르지만 야권에선 대체로 문재인 전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의원, 그리고 박원순 시장이 삼각구도를 이루고 있다. 박 시장은 최근 <정치의 즐거움>이란 책을 통해 박원순식 정치를 전면화했다. 박 시장도 책에서 새 정치를 이야기했다. 그가 말하는 새 정치는 소통과 참여의 정치, 다시 말해 정부와 시민이 함께 이끌어가는 거버넌스에 바탕한 정밀행정이다. 시대의 화두를 생활정치 속에서 세밀하게 행정으로 구현하는 것이 박원순의 작은 정치다.

박 시장이 역점을 두고 있다는 마을공동체 만들기, 협동조합운동, 사회적 기업 등은 생활 속에 진보를 실천하는 작은 정치의 사례다. 일종의 착한 행정인 셈이다. 하지만 그의 착한 행정은 어딘지 모르게 취약해 보인다. 조그마한 흠집에도 큰 균열이 날 것 같다. 대중에 뿌리박은 끈끈한 리더십, 오뚝이 같은 강인함이 없다. 이번 안전사고는 단적인 예다. 서울시장에게 이런 사고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안타까운 죽음이 없는” 행정을 공언하는 박 시장에게는 타격이다. 그렇다고 경전철 사업처럼 큰 건을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민자를 끌어들이는 대형 토목사업인 경전철 사업은 어찌됐든 선거 논리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은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탈이란 얘기도 듣는다. 시민운동가 시절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 외국 출장에서 돌아온 뒤 집이 이사한지를 몰라 집을 찾느라 허둥댔다는 얘기도 있다. 일만 아는 무심한 사람, 낭만이나 여유를 모르는 사람이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서울시장이 된 뒤로는 너무 늦게까지 남아서 공무원들에게 폐 끼치지 않겠다고 했지만 공무원들이 그를 수월해한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는 언젠가 “내가 제대로 일하면 공무원들이 다 병원에 실려갈 것”이라고 일 욕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원순의 정치는 노무현의 정치와 맥이 닿아 있다. 박 시장도 노 전 대통령처럼 시민의 참여, 혁신, 기록과 정보공개 등을 강조한다. 박 시장은 그의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을 두고 “그분 생각이 정말 올바르다고 생각했고 모두 다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랐다. 하지만 갈등이 너무 많았고,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을 다 못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반대파를 설득하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못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 삼은 탓인지 박 시장은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과 우선적으로 대화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런 그도 조직 내에선 독선적이어서 대화가 잘 안된다는 말을 듣곤 했다. 박 시장으로선 서울시정이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가다듬는 장이 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엔 박 시장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재선하면 혼미한 야권 판세를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는 이들이 제법 있다. 일종의 대망론인 셈이다. 하지만 이제껏 이런저런 대망론이나 대세론은 상당수가 허무하게 끝이 났다. 중요한 건 조직과 정책을 통해 함께 대세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박원순의 작은 정치가 정치의 큰 물줄기로 어떻게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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