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어느 청년창업센터 개관식에 다녀온 적이 있다. 유력 투자기관이 만든 청년창업센터답게 평일 오전인데도 많은 청년들로 북적였다. 선정된 팀들이 차린 부스는 시연하며 질문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오프닝 행사에는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이 이어졌다. 많은 청년들이 이를 보기 위해 오랜 시간을 가방을 멘 채 빽빽하게 서 있는 모습은 사실 좀 신기했다. 네트워킹 행사가 열리는 동안 다른 층에서는 관계자들과 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식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5년 전 희망청을 꾸릴 때가 떠올랐다. 희망청은 ‘함께 일하는 재단’과 문화예술1호 사회적 기업인 ‘노리단’의 공동 투자로 만들어진 ‘청년 데뷔 네트워킹센터’였다. <88만원 세대>가 출간되고 시민단체와 진보진영에서 ‘청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으며 상대적 빈곤이나 삶의 질이 보통의 사람들 사이에서 의제가 되었다. 상근자로 일하며 정책 제안, 문화 행사, 사회적 기업 아카데미 등 많은 일을 했지만 그중 세상을 바꾼 일은 없었다. 청년을 조직하기 어려워 문화운동으로 방향을 잡았고 대안으로 사회적 기업을 제안했다. 돈이 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창업경진대회에 20대들을 보내기도 했고, 정부 지원을 받은 청년 사회적 기업가 아카데미는 몇 개의 창업팀을 성공시켰다. 칙칙한 사회적 기업이라는 말 대신 공익적인 목적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목적을 가진 벤처기업을 의미하는 말인 ‘소셜 벤처’를 사용했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를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고 나서 한동안 가슴이 뛰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세상을 바꿀 뭔가를 만든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다. 해외 취업 장려와 오디션식 청년 창업 지원을 청년 문제의 해결책으로 내놓았던 새누리당의 지난 대선 공약이 너무나 멀게 느껴진 이유다. 청년 창업이 실업 해결책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고, 이전과 달리 똑똑한 친구들은 창업을 준비하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열정과 창의성이 인재 선발 기준이 되던 시점부터 대학 동아리가 다양화되고 이를 자기소개서에 적어내게 된 것처럼 이 또한 스펙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문제는 창업에 성공하는 이들도 소수고, 그 성공하는 소수도 대기업에 들어가기에 손색이 없는 카이스트나 서울대 공대 출신이라는 점이다. 청년 창업이 실업 해소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증거다. 청년 창업이 ‘선발 후 지원금’을 주는 데 집중되고 주로 아이티(IT)기술이나 서비스 분야로 한정되는 현실도 문제다. 청년 창업 독려는 새로운 서비스 기술 기업을 개발해야 하는 정부나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은행권의 수요를 만족시킨다. 외국 자본에 판매되며 창업 성공 모델이 된 티켓 몬스터를 떠올려보자. 한쪽에서는 지자체의 이름을 단 청년 점포들이 생기지만, 이들은 동네에서는 ‘애들 장난’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지원 이후 인큐베이팅이 없기 때문이다.
어려운 현실에서 분투하는 청년 창업가들을 존경하며, 그들이 진심으로 부럽다. 하지만 많은 20대들이 재수 삼수를 하고, 편입을 하고, 그렇게 들어간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영어 학원을 다니며 스펙을 만들고, 그렇게 해도 취업이 안 될까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러 노량진에 몰려드는 현실을 보수주의자들도, 좌파들도 개탄하는 현실에서 의미있는 청년 창업의 모델들이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 이를 위한 인프라와 정책의 방향이 절실하다.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