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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성한용 칼럼] 그 정도로 나라가 흔들리지 않는다

등록 2013-09-02 19:33수정 2013-09-03 11:06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30일 저녁 국회 의원회관의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석기 녹취록’에 나오는 자신의 발언을 부인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30일 저녁 국회 의원회관의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석기 녹취록’에 나오는 자신의 발언을 부인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대상포진 같은 ‘주사파’와 ‘가스통 할배’…‘면역체계 활성화’ 측면도
‘이석기=통합진보당’ 등식 깨야…과도한 ‘종북몰이’는 루푸스와 비슷
‘이석기 의원 녹취록’을 읽다가 그 어르신 생각이 났다. 그는 술에 취하면 월남에서 베트콩 잡던 얘기를 늘어놓았다. 탱크로 포를 쏴서 베트콩을 죽였다고 했다. 빨갱이는 그렇게 잡는 거라고 했다. 실은 그가 행정병이었고 전투에 제대로 참가한 적도 없다는 것을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알았다. 그가 했던 무용담은 대개 동료들이 과장해서 전해준 허구였다.

부러움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도 거짓말은 좀 낫다. 욕구가 심해지면 소영웅주의라는 병에 걸린다. 여자보다 남자들에게 발병률이 높다. 이런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결정은 내가 한다’, ‘진짜 주인공은 바로 나다’라는 환상에 빠진다. 늘 ‘진짜 배후’가 되려고 한다.

<한국일보>가 공개한 녹취록에는 “60여년간 형성했던 현 정세를 무너뜨려야 한다”, “오는 전쟁 맞받아치자”, “미국놈을 몰아내고 새로운 단계의 자주적 사회, 착취와 허위 없는 조선민족의 시대 꿈을 만들 수 있다”, “물질적, 기술적 준비를 갖춰야 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석기 의원이 정확히 부인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런 말을 하긴 한 모양이다. ‘뼛속까지 평화주의자’라는 그의 해명을 믿기 어렵다.

반미와 자주를 강조하는 그의 주장은 1980년대 중반 민족해방(엔엘) 계열 일부 이론가들의 주장과 닮았다. 당시에는 그런 분석이 한반도 정세를 설명해줄 수 있는 유력한 가설이었다. 그런데 30년 전 가설로 현재를 분석하면 망상이 된다.

대상포진이라는 병이 있다. 어릴 때 몸속에 들어간 수두 바이러스가 활성화하면서 나타나는 질환이다. 나이가 들거나 피로가 쌓여 인체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발생한다. 띠 모양의 물집이 생겨 대상포진이라고 부르지만, 바이러스가 신경세포를 망가뜨리기 때문에 엄청난 통증을 일으킨다. 대상포진은 완치 방법이 없다. 바이러스를 박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체의 면역력을 끌어올려 바이러스를 다시 몸속 깊숙이 가두는 수밖에 없다. 수두 바이러스가 인체에 유해하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수두 바이러스가 사라지면 면역체계가 느슨해져서 다른 질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는 ‘주사파’도 있고 ‘가스통 할배’도 있다. 이들의 행위가 위법에 이르면 형사처벌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함께 살아야 한다. 헌법은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주사파나 가스통 할배 덕분에 우리 사회가 면역력과 복원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주도권을 잡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다.

지금 오히려 걱정해야 할 것은 과잉대응이다. 새누리당의 유기준 최고위원은 정부가 통합진보당의 정당 자격을 잘 판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당 해산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혜훈·심재철·정우택 최고위원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과 연대했다는 이유로 민주당의 잘못을 거론했다. <조선일보>는 ‘국회의원 이석기를 만든 책임’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노무현 정부의 사면·복권과 민주당의 선거연대를 비판했다.

이들은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 전체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2000년에 만들어진 민주노동당의 후신이다. 노동자의 피와 눈물로 만든 정당이다. 세상을 바로잡겠다며 현장에 뛰어든 활동가들의 헌신으로 만든 정당이다. 강령과 당헌·당규 어디에도 위헌 요소가 없다. 통합진보당 스스로 이번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루푸스라는 자가면역 질환이 있다. 라틴어로 늑대라는 뜻이다. 피부에 나타나는 상처가 늑대에 물린 자국 같다고 해서 붙은 병명이다. 자가면역은 외부로부터 인체를 방어하는 면역계가 이상을 일으켜 오히려 자신의 신체를 공격하는 현상이다. 피부, 관절, 신장, 폐, 신경 등 전신에서 염증과 극심한 통증이 일어난다. 환자는 대개 가임기 여성들인데 원인도 모르고 완치 방법도 없다.

보수세력 일각에서는 통합진보당뿐만 아니라 정의당과 민주당까지 종북으로 몰아붙이며 공연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루푸스를 꼭 닮았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실체와 파장은? [한겨레캐스트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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