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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북한이라는 ‘만병통치적 질곡’

등록 2013-09-04 19:07수정 2013-09-11 10:03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아무래도 미국이 시리아에 대해 단독 군사개입을 감행할 모양이다. 불길한 징조다. 시리아 사태는 단순한 내전이 아니다. 이슬람 종파들과 부근의 모든 나라들이 뒤엉킨 국제전이다. 섣부른 군사개입은 중동 전역의 갈등을 키울 게 분명하다. 독일 등은 물론이고 미국의 가장 충실한 군사 동반자인 영국도 ‘어떤 군사작전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은 상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인사들이 미국의 군사개입을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무책임한 행태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국 관리들이 미국 쪽 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 지금처럼 시리아 사태에 대해 수수방관할 경우 북한으로 하여금 생화학무기로 남한을 공격해도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오판을 하게 만들 수 있다’며 군사개입 요구를 했다고 최근 전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지난주 브루나이에서 한-미 국방장관 회담 이후 한 발언도 비슷한 내용이다. “2500톤의 화학무기를 가진 북한이 (자신도) 사용할 수 있다는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시리아) 문제는 구체적인 제재가 있어야 한다는 데 (미국과) 의견을 같이했다.”

이석기 의원과 일부 통합진보당 인사 등이 연루된 ‘내란음모’ 사건 파문이 한창이다. ‘이석기 사태’는 국정원이 지난 10여년 사이에 만들어낸 최대의 공안사건이다. 언론플레이 등 사후조처도 치밀하다. 개혁 요구에 몰리던 국정원이 과거 운동권 세력의 약한 고리를 낚아채 회심의 일격을 날렸고, 새누리당과 친정부 언론들은 민주당과 과거 정부 인사들까지 이 사태의 파장 속에 가두려고 애쓴다.

이런 와중에 국사편찬위원회는 뉴라이트 성향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교학사)를 검정심의에서 최종 합격시켰다. 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한국사가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수과목이 된 데 이은 조처다. 이 교과서와 다른 교과서의 가장 큰 차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한 대목에 있다. “제2공화국은 4·19 혁명에 참여하였던 다양한 세력으로부터 압력을 받게 되었다. 김일성이 1960년 8월에 남북 연방제를 제안하는 등 은밀한 적화를 기도하였다. 일부 학생들은 남북 학생 회담을 주장하였고, 혁신계의 정당들은 북한과의 정치 협상을 주장하였다. 장면 정부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특히, 북한과의 대치 상황에서 군비축소를 약속하고… 경찰의 치안 능력을 약화시켜 혼란을 자초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정희를 중심으로 일부 군인들이 쿠데타를 단행하였다.”(324쪽) 쿠데타 세력 쪽에서 기술한 궤변이다.

세 사안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북한이라는 ‘절대 악’을 정당성의 근거로 삼는 게 그것이다. 미-소 냉전이 종식된 지 20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도 북한이 여전히 큰 규정성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을 만병통치약처럼 활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지만 익숙하다. 친북·반북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문제가 쉽게 정리가 되는 듯한 착각이 생긴다. 하지만 이는 큰 질곡이기도 하다. 북한의 규정성을 강조하다 보면 북한은 괴물이나 구세주가 돼버린다.

국정원 쪽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석기 의원 그룹’한테 북한은 구세주다. 이들은 좋은 말로 하면 ‘좌익 모험주의자’이고, 시쳇말로는 ‘수구꼴통’의 정반대편에 있는 ‘좌익꼴통’이다. 40~50대가 주축인 이들이 젊은 세대의 호응을 받아 세력을 확장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지금의 국정원과 정권에 북한은 괴물이고, 괴물로 인식하는 순간 수구꼴통적인 행태가 탄생한다. 국정원이 자신의 개혁을 피하기 위한 카드로 이석기 사태를 부각시킨 것 또한 수구꼴통의 전통적 방식이다. 단기적으로 유리할지 모르지만 결국 스스로 만든 질곡에 갇히게 된다.

어느 쪽이든 북한에 대한 허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말기 바란다. 북한은 경제력이 남한의 40분의 1 정도이고 체제 유지를 위해 몸부림을 치는 나라다. 때때로 남쪽과 심각한 갈등을 겪지만 결국은 통일을 이뤄내야 할 상대다. 고의든 아니든 북한을 계속 만병통치약으로 삼는다면, 거꾸로 북한이라는 존재가 우리를 과도하게 규정하는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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