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훈 변호사
진선미 의원이 지난 3월 공개한 국정원 자료,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을 보면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은 “북한과 싸우는 것보다 민노총·전교조 등 국내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 더욱 어려우므로, 확실한 징계를 위해 직원에게 맡기기보다 지부장들이 유관기관장에게 직접 업무를 협조하기 바람”(2011년 2월18일)이라고 지시하였다. 전교조를 ‘내부의 적’으로 간주한 것이다. 최근에는 전교조 소속 교사가 “아르오”(RO·혁명조직)의 조직원이라는 근거 없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 와중에 고용노동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려 하고 있다. 왜 전교조가 합법화된 지 14년이 지난 지금인가? 국정원, 연금 문제 등으로 인한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공안 분위기 조성의 일환이라는 의혹이 가능하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법 때문이라고 한다. 해고자는 더는 교사가 아니므로 조합원의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형식논리일 뿐이다. 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면, 그 규정의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합당한 이유 없이 그저 법이니까 따르라고 한다면, 그건 폭력이다.
법에서 해고자의 노동조합원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법 교과서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노사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개입을 금지하던 규정의 잔재 정도다. 고용노동부와 현행법의 논리는 전교조 조합원이 해고된 뒤에도 조합원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는 해고자를 제3자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해고된 조합원이 제3자일 수 없고, 그런 해고자를 보호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 중의 하나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신설한 제3자 개입 금지 규정은 대표적 노동 악법으로 비판을 받아오다 1997년 노동법 개정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폐지된 악법의 취지가 조합원 지위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악법은 법이기 이전에 악이다. 악법에 대하여는 준수 의무를 논하기 이전에 우리 사회가 부담하는 개정 의무를 먼저 살펴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법대로’를 외치며 서둘러 처리할 사안이 아니다.
법에서 해고자의 조합원 지위를 부정하는 이유가 해고자는 노동자·교사·공무원이 아니라는 형식논리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해고자들의 영향력 때문에 노동조합의 활동이 과격해질 우려가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해고자의 조합원 지위에 대한 이런 입장이 바로 현재 밀양에서 횡행하는 ‘외부세력’의 논리다. 보수신문, 밀양시장에 이어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도 “외부세력은 밀양을 떠나라”고 주문한다. “외부에서 지원을 오면서 대치 현장이 과격해”지고 갈등이 장기화된다는 것이다.
이는 약자들의 호소를 차단하고 고립시키는 전형적인 권력과 강자의 논리다. 삶의 터전과 안전을 지키려는 주장이 ‘님비’(NIMBY·지역이기주의)로, 보상금을 올리려는 이기적 행동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 사는 어디라도 송전탑이 지어진다면 막겠다”는 그들의 호소에 동참하는 것이 외부세력이라면, 갈등을 조정하고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정치는 설 자리가 없다.
오히려 연대는 의무고 책임이다. 6만명의 조합원이 9명의 해고자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법외노조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 송전탑 주변 주민들의 안전과 삶의 터전을 담보로 삼아 도시에서 편안하게 전기를 사용할 수는 없다는 인식으로 밀양의 호소에 함께하는 것, 이것이 연대다. 밀양과 전교조는 외부와 내부가 만나는 방법, 연대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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