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예체능>(KBS)
[토요판] 신소윤의 소소한 TV
“하나 둘 톡! 하나 둘 톡!” 박자에 맞춰 탁구공이 오갔다. “아, 거참 학생은 ‘톡’에 치라니까 왜 성급하게 ‘둘’에 공을 치려고 해. 그러니까 자꾸 공을 놓치지.” 내 팔을 스치고 허공으로 날아간 공을 주우러 다녀오니 강사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12살 때였는지 13살 때였는지 이제는 시점도 가물가물해졌는데, 어쨌거나 그 무렵 겨울방학에 동네 탁구장에서 학교 친구들 몇과 탁구를 배운 적이 있다. 탁구장을 하는 친구 엄마가 젊은 시절 무슨 지역 대표 탁구 선수였다는 아저씨를 섭외했다. 아저씨는 배가 나오고 키가 크고 덩치도 크고 눈썹도 진하고 목소리도 크고… 처음 본 순간 포청천을 떠올렸는데 어쨌거나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다람쥐같이 날렵한 탁구 선수와는 몹시 다른 이미지였다. 하지만 의심은 접어두라는 듯 강사는 서브를 넣고 공을 되받아칠 때만큼은 몹시 날랬다.
친구 6~7명과 탁구 강좌를 들었다. 개중에는 탁구에 재능을 발견해 꾸준히 치다가 대학에 가서 학교 전체 시합에서 우승을 했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운동신경이 꽝인지라 역시나 재미를 못 붙였다. 친구들과 편을 짜 시합을 해도 왼손잡이여서 그런지 뭔가 합이 안 맞았다. 몇몇 친구들은 방학이 끝나고도 한동안 탁구장에 들락거렸지만 더 잘할 기미가 보이지 않던 나는 이후 탁구장에 거의 걸음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몸은 기억한다고, 손에 맞춰 깎여 있던 탁구라켓을 쥐었을 때 왠지 안정되는 느낌과 라켓의 고무판에 공이 톡, 하고 부딪혔을 때 전달되는 경쾌함 같은 것은 여전히 선명하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게임에서 얼렁뚱땅이었을 테지만 어쨌거나 이겼을 때, 그 짜릿함 또한 생생하게 떠오른다.
지금은 소식도 흐릿해진 친구들이지만 그때 동네 탁구팀이 꾸준히 명맥을 이어갔다면 어땠을까. 우리도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 <우리동네 예체능>의 어떤 팀처럼 단체복을 맞춰 입고 뭐 이름도 ‘세븐 핑퐁스’ 이런 식으로 지어서 원정 시합을 다니거나 그랬을까.
볼링, 배드민턴, 탁구 등 생활체육 종목으로 평범한 이웃들과 대결을 펼치는 <우리동네 예체능>(KBS)이 요즘 다시 탁구로 돌아왔다. 10월1일, 8일 방송에서는 사이판으로 해외원정을 떠나 탁구대를 펼쳤다. 헛스윙을 남발하는 재경이나 ‘탁구 악마’라는 별명이 있지만 정작 탁구는 못 치는 최강창민부터 준프로급 실력의 조달환까지, 상대인 사이판 교민팀은 자신감으로 승부하는 탁구 소년 장요엘부터 현정화 선수와 함께 훈련했다는 노영순씨까지 가지각색 실력의 선수들이 탁구대를 사이에 두고 맞섰다. 경기는 어릴 적 동네 탁구장에서 흔히 보던, 예컨대 허공에 팔을 휘젓고 엉뚱한 곳으로 공을 날리는 장면부터 무림 고수의 경기까지 다양하게 펼쳐진다.
이 프로그램이 재미있는 것은 잘하는 이들이 펼치는 경기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 못지않게, 잘 못하는 선수들이 출전할 때도 박진감이 넘친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엠티(MT)를 가면 흔히 보는, 오합지졸 선수들의 족구 경기에 묘하게 몰두하게 되는데 그것과 일견 비슷하다. 당연해 보이는 쉬운 공을 받지 못하고, 어려운 공을 엉겁결에 받아내는 순간들은 영리한 선수들의 잘 짜인 경기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스펙터클하다. 프로 선수가 아니므로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의 답답함, 제멋대로 움직이는 공이 왠지 나를 잘 이해 못 해주는 것 같은 억울함 같은 걸 우리는 서로 이해한다. 그 이해와 갑갑함 사이에서 때로 말도 안 되는 승부가 펼쳐지기도 하고 의외의 역전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우리동네 예체능>은 네트를 사이에 두고 공이 오가고, 볼링핀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공을 굴리는 단순한 장면이 반복되는 소박한 프로그램이다. 여기는 <무한도전>처럼 재기 넘치는 기획이나, <런닝맨>처럼 수싸움이 난무하는 긴박한 레이싱 같은 건 없다. 언제나 치열하게 승부수를 던지지만 사실은 누가 이겨도 상관없는 경기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모두가 아마추어라서 더욱 박진감 넘치는 이 평화로운 경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한겨레21>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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