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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망함에 대해 / 김사과

등록 2013-11-24 19:16

김사과 작가
김사과 작가
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느낌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으로 다가올까.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망하는 과정의 지속적 인지보다는 망함의 한복판에서 문득 느껴지는 바닥을 모르게 깊고 당황스러운 감정에 가까운 것 같다. 그것은 직접 겪는다면 지옥이겠지만 망하고 있는 누군가를 목격하는 것은 꽤 흥미로운 경험일 수 있다. 그 망함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것은 강렬한 미적 경험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낙관과 풍요 속에서라면 결코 볼 수 없는 인간의 본모습을 시각화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그래서 많은 예술가 지망생들, 소재와 영감이 고갈된 프로 예술가들이 망함을 둘러싼 풍경에 파리떼처럼 달라붙는다. 예술학교를 다닐 적에 비슷한 일을 몇가지 겪었다. 하나는 1학년 때 과에서 단체로 여행을 떠났는데, 갑자기 변두리의 한 마을에 차를 멈췄다. 그건 지방의 한 쇠락한 작은 마을이었다. 영화감독 지망생들이 값비싼 카메라를 들고 호기심에 가득한 표정으로 남의 치부를 들추고 다니는 꼴이 역겨웠다.

또 하나는 교수의 인솔로 수업을 듣는 사람들과 단체로 서울 서남부 지역에 간 적이 있는데, 앳된 조선족 아가씨가 일하는 역전 다방에서 차를 마시고 근처 곱창집에 가서 곱창을 먹으며 동네 풍경의 이국성에 대해서 감탄했다. 정말로 불쾌한 하루였다.

다행히 그 시기는 전세계가 표면적으로 풍요로워 보이던 시기여서 사람들은 여유로운 태도로 남의 망함에 대한 부적절한 관심을 표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황 속에서 모두가 천천히 늪으로 기어들어가고 있는 요즘, 사람들은 남의 망함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대신 자신의 망함에 몰두한다. 망함에 관한 소문을 수집하고, 그것을 퍼뜨린다. 하지만 방식은 다르지가 않다. 자신의 망함에 대해서 남의 망함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선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신의 망함을 구경거리나 혹은 웃음거리로 전락시키기.

어쩌면 이런 태도는 자기학대라는 점에서 남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보다는 낫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똑같다. 어쩌면 이것은, 사람들이 자꾸만 망함을 미성숙한 태도로 다루고야 마는 이유는 다들 망해본 적 없는, 하지만 망할 일밖에 남지 않은 시대와 세대에 속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희망적이다. 왜냐하면 망하는 것은 시대이지 세계가 아니고, 세대이지 인류 전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돈에 의해서 키워진, 클릭하고 터치할 줄밖에 모르는 멍청이들이 통째로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고 해도 세계는 지속되고, 인간들은 살아갈 것이다. 그건 우리들의 세계가 아니겠지만 어쩌면 우리들의 것보다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건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다. 아마도 우리는 절대 그곳으로 갈 수 없다. 우리는 우리들이 속한 꿈에서, 점차 악몽으로 변해갈 우리들만의 꿈에서 깨어날 수 없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우리와 전혀 다른 타인들의, 우리가 관여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그들이, 우리와 닮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를 바라보지도 동정하지도 않기를 바란다. 어딘가에 그런 진정한 타인들이 존재하기를 기원한다.

김사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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