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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장성택 이후 / 김연철

등록 2013-12-12 19:27수정 2013-12-17 10:06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다. 권력이란 그런 것인가? 젊은 후계자를 위해 아버지는 후견자를 세웠다. 후견의 명분으로 권력이 남용되었다. 아들은 이제 후견이 필요없음을 선언했다. 후견자의 예고된 운명이다. 숙청의 절차가 이례적이고, 나열된 죄명이 모멸적인 이유는 역설적으로 장성택의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장성택 이후 김정은 정권은 어디로 갈까? 보수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근거가 없다. 장성택이 개혁파를 대변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004년 실각하고 2007년 당 행정부장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개혁 후퇴에 앞장선 보수 공안파였다. 장성택은 특정한 성향의 관료가 아니다. 2000년대 흔들거리는 북한 집권층의 일부였다. 그리고 장성택은 김정은 체제의 중요한 정책변화에서 이미 비켜나 있었다. 올해 4월부터 경제정책은 박봉주 내각이 주도하고 있다. 장성택 숙청 이유 중 하나가 내각의 경제운영에 개입했다는 점이다.

북한의 어떤 세력도 박봉주 내각이 거두고 있는 성과를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농업분야는 주목할 만하다. 가장 정통한 유엔 기구인 세계식량계획은 내년 북한의 곡물부족분이 34만톤이라고 발표했다. 상업적으로 30만톤을 수입할 예정이기에 실질 부족분은 4만톤이다. 식량위기는 옛날 얘기가 되었다. 이 정도면 먹는 문제가 해결되었다. 식량 증산의 이유는 무엇인가? 양호한 기후와 비료 생산의 증가를 들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도개선의 효과다.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군사적 억지노선과 경제발전은 충돌한다. 병진하기 어렵다. 그리고 장성택 사건은 ‘문지기 국가’의 한계를 드러냈다. 개방 과정에서의 이익을 권력부서가 가져간다면, 그래서 지금처럼 부패로 이어진다면, 개방의 확산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궁정경제의 문지기를 장성택에서 다른 엘리트로 교체해서 문제가 해결될까?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체제는 여전한 과제다.

대외정책은 어떨까? 국내정치의 위기가 공격적인 대외정책으로 나타날까? 이 또한 근거 없는 예측이다. 지난 5월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중국에 특사로 갔다. 현재를 예고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최룡해는 당시 경제발전을 위해 평화적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북한은 공격적 군사주의에서 대화노선으로 전환했다. 지난해 말부터 대외정책 결정은 현 집권층이 했다. 관련 실무관료들도 그대로다. 장성택은 비켜나 있었다. 숙청이 정책변화의 변수가 아니다.

북한 정치의 불가측성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묻고 싶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은 우리의 이익이 아니다. 예측 가능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대북정책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북한 정치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붕괴론이 부활한다. 근거 없는 희망이다. 김정은 체제에서 제도가 작동하고 있다. 군에 대한 당의 통제 수준을 보면 군부 쿠데타의 가능성은 없다. 국가의 폭력기구들은 과잉 발전되어 있고, 불만은 통제되어 있다.

그렇다고 영원히 안정적인 권력이 가능할까? 유일적 영도체계는 확립되어도 권력구조의 균열은 계속될 것이다. 김정일이 왜 2007년 당 행정부를 부활시켰을까? 권력은 언제나 견제와 균형을 추구한다. 그래서 사냥개를 삶을 솥의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말했다. 군주는 잔인하다는 평판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처벌의 공포를 활용하라고. 북한의 젊은 군주는 권력의 속성을 이해했다. 그러나 아는가? 마키아벨리가 덧붙인 말을. 폭력의 강도와 빈도가 높아지면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관련영상] [한겨레 캐스트#210] '장성택 숙청', 북한은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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