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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의사 선생님이 왜 목에 칼을 댔냐고요?

등록 2013-12-20 19:23수정 2013-12-21 10:04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우연의 일치부터 설명하고 가야겠습니다. ‘아무도 두번째는 기억해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 상황과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끌어다 써 보겠습니다. 오늘의 주제인 의사들이 집회 혹은 궐기대회를 열다가 자해를 한 사건은 지난 15일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2007년 2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회에서 서울시의사회에서 일하던 한 간부가 수술용 칼로 배를 그었습니다. 당시 저는 비록 의료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옳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살리라는 수술용 칼이 오히려 생명을 위협하는 도구가 돼서는 곤란하다고 썼습니다. 물론 당시 의료법 개정안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해한 의사의 빠른 쾌유도 기원했지요. 이번에 노 회장은 흉기로 자신의 목을 그었다고 하니, 다소 살벌하기도 하네요. 결국 또다시 의사들의 자해에 대한 글을 쓰게 됐습니다. 마침 ‘친절한 기자들’에 제가 등장하는 것도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우선 노 회장의 자해 사건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을 듣고 따라서 목숨을 스스로 끊는 ‘베르테르 효과’를 생각해 봐야겠죠. 게다가 의사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고귀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환자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하겠죠?

의사 자해 사건에 대한 지적은 이 정도로 하고, 요즘 의사단체는 물론 보건의료 시민단체들도 모두 나서서 의료 민영화 반대의 촛불을 왜 다시 들었는지 살펴봐야겠습니다. 의료 민영화 반대 촛불도 두번째네요.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5월부터 몇달 동안 촛불은 꺼지지 않았고, 그 덕분에 건강보험도 지켜내고 영리병원도 설립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번 의료 민영화 반대 움직임은 정부가 지난 13일 병원이 건강보조식품이나 화장품을 팔거나 각종 영상검사장비 등 의료기기 회사 심지어는 온천이나 숙박시설까지 설립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한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현재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민간병원이 여러 수익사업을 하도록 허용한 것인데 이게 ‘민영화냐?’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지금도 이익을 내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상업화된 의료에 각종 수익사업까지 하도록 한 날개를 더 달아준 것뿐이라는 지적은 수긍할 수 있지만 의료 민영화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의료 상업화의 가속화’가 더 적절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된다면 환자들은 병원이 권유한 화장품이나 건강보조식품을 사서 써야 하고, 병원이 설립한 의료기기 회사의 제품을 사거나 의료기기 회사가 병원에 납품한 고가의 영상검사를 더 많이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오겠죠. 의사들이 각종 검사나 피부 미용에 좋다고 화장품을 권하는데 그 자리에서 반대하고 나서는 환자를 찾기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분명 환자들이 병원에 내야 하는 의료비는 크게 오르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다 이번 정책에서는 병원간 인수합병도 가능하도록 했으니, 적자를 내어 다른 병원에 먹히는 것을 피하려면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환자들에게 갖은 압력과 부담을 가하겠죠? 경영이 어려운 병원의 경우 외부 자본이 들어온 자회사가 수익을 내면서 병원의 경영을 좌우하는 일도 벌어질 것입니다. 비록 미국과 달리 공공보험인 건강보험은 살아 있지만, 민간병원이 90%를 넘게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 병원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 ‘전쟁’을 한다면 환자들의 의료비가 크게 오르게 되겠죠? 건강보험은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크게 덜어주지 못하게 되니,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있어도 존재감이 없게 된다는 말이죠. 이 때문에 보건의료 시민단체들은 꼼수 혹은 우회로를 택한 의료 민영화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환자 쪽만 살펴봤는데, 의사들은 어떨까요? 화장품, 건강보조식품을 팔아야 하고, 불필요한 검사도 환자에게 시켜야 하는 그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스스로의 양심을 팔아야만 하는 상황이 닥치겠죠? 지금까지 그렇게 해 오지 않았냐고요? 물론 일부 하기는 했지만 양심에 걸려 가면서 혹은 주변 의사들에게 비판을 받으면서 했죠. 그런데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독려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의사들이 일요일에 모여 집회까지 열면서 반대하는 이유가 될 만하나요?

김양중 사회부 사회정책팀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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