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선 편집인
새해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건만, 희망을 말하기엔 조심스럽다. 사상 최장 기록을 갈아치운 철도노조의 파업은 국회의 중재로 간신히 종결됐지만 밀양 송전탑 문제 등 사회적 갈등 요소가 해를 넘긴 채 지뢰밭으로 남아 있고, 밖으로는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동북아 나라들 사이의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안녕들 하시냐는 한 대학생의 물음에 아니요라고 답하는 외침이 온 나라에 메아리칠 정도로 국민들의 불안은 높아만 가건만, 불통을 영예로 여기는 박근혜 정권은 정치력 대신 대결적 자세만 강화해 왔다.
이 답답한 형국에 뭐라도 해보자는 딸과 함께 지난 주말 민주노총 총파업 현장에 나가보았다. 차벽으로 둘러싸인 서울광장엔 칼바람이 불었지만, 철도노동자들과 그들과 연대하려는 노동자·시민들의 열기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75년 해직언론인 선배들부터 청년 학생들까지 참여의 폭도 넓었다. 10만명이 넘는 인파에 젊은이들까지 참여한 현장의 열기가 고무적이라고 하자, 딸은 페이스북에 갈무리해뒀던 한 청년의 대자보를 꺼내 보여줬다.
올해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했다는 그 청년의 글은 “안녕들 하시냐길래, 올 한해 내 삶을 돌아봤어요”로 시작했다. 봄에는 학점을 따기 위해 공부만 했어도 B+밖에 못 받았고, 평점이 4.0이 넘었지만 학점 괴물들 탓에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고 탄식했다. 여름에는 새벽 6시부터 학원에서 토익 공부를 했고, 가을에는 ‘진짜 나’는 하나도 들어 있지 않은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푸줏간에 걸린 돼지고기가 된 것 같았다고 자학했다. 면접에 실패해 신생아처럼 우는데 들려온 “이 세상 살다 보면 슬픔보다 기쁨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될 거야”라는 이문세의 노랫말은 그에게는 ‘터무니없이’ 해맑게 들렸다. 결국 취업에 성공은 했지만 안녕한지는 모르겠다고 한 그는 안녕하지 못했고 안녕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안녕하지 않을 것 같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다.
딸은 이처럼 안간힘을 다해도 극단적인 경쟁체제 속에서 살아남으리라는 확신을 갖기 어려운 젊은 세대의 불안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들이 ‘안녕들 하십니까?’에 응답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치적 참여로 이어지리라 보는 것은 기성세대의 ‘터무니없이 해맑은’ 기대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그들의 안녕하지 못한 삶이 철도노조 파업과 무관하지 않음을 제대로 일깨워주지 못하는 한, 광장의 외침은 또 하나의 단말마의 비명으로 끝나고 말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맞는 이야기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해답은 그 청년의 글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앞만 보고 내달려 취업에 성공한 지금조차 안녕하지 않고, 앞으로도 안녕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한 바로 그 말 속에. 그들의 뿌리 깊은 불안이야말로 경쟁과 효율을 지고선으로 삼는 경쟁지상주의란 폭주기관차를 멈춰 세워 방향을 틀지 않고는 우리가 소망하는 안녕을 찾을 수 없다는 방증이다.
경쟁만이 살길은 아니다. 다른 길도 분명 있다. 며칠 전 방문했던 전주 덕일중학교에서 그 가능성을 봤다. 전체 학생의 3분의 2가 차상위계층 이하일 정도로 빈곤층이 몰려 있는 이 학교는 2011년 120명의 신입생 중 59명이 전학을 가버리는 통에 기피학교의 대명사가 됐다. 그런데 지금은 떠났던 아이들조차 돌아오고 싶어하는 선호학교로 변모했다. 혁신학교로 지정된 뒤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똘똘 뭉쳐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각기 흩어져 아이들과 씨름했던 선생님들이 함께 고민을 시작하니 길이 열렸다. 선생님들은 경쟁이 아닌 협력을 핵심가치로 삼고 한 학생도 낙오시키지 않는 수업을 추구했다. 학부모들은 내 아이 남의 아이 구별 않고, 돌봄의 손길을 뻗쳤다. 그러자 그토록 문제됐던 학교폭력과 학력미달 학생이 사라졌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자긍심에 가득 차, 학교 자랑에 열을 올린다. 경쟁지상주의를 떠나 나눔과 협력, 돌봄에 바탕한 공동체를 이루니 평화와 안녕이 깃든 것이다.
이제 우리도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뎌야 한다. 비록 오늘은 안녕하지 않더라도, 내일은 안녕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공유하기 위해서.
권태선 편집인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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