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특유의 화법으로 통일 대박론을 제기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엊그제 새해 기자회견에서 “국민들 중에 통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지 않겠느냐, 그래서 굳이 통일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다”며 “그러나 저는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라고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남북통합이 시작되면 전 재산을 한반도에 쏟겠다는 세계적인 투자 전문가도 있다”며 “한반도의 통일은 우리 경제가 대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다음날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을 초청한 청와대 만찬에서도 통일 준비 필요성을 역설했다.
“통일은 대박”이라니? 얼마나 쉽고 명쾌한가? 정당 지도자 시절 그는 면도칼 테러를 당하고 실려간 병상에서 “대전은요?”라고 한마디 물음으로써,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개인의 처지보다는 집단 전체의 과제를 위해 헌신한다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지방선거 판세를 뒤집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을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한 방에 찍어내는 수사법을 구사했다. 박 대통령이 과거 “선거의 여왕” 칭호를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짧은 감성적 표현으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탁월한 정치선전 언어 선택 덕분이었는데 이번에 박 대통령은 특유의 솜씨를 다시 발휘했다. 게다가 현직 대통령의 영향력까지 덧붙어서, 통일은 박근혜 정부의 최우선 국정 화두로 돌연 부상했다.
하지만 찬찬히 짚어보자. 박 대통령 말대로 하면 정말 통일이 이뤄지고 대박도 쏟아질까? 나는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나는 통일을 제대로 하려면 목표뿐 아니라 과정이 똑같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남과 북이 교류협력하면서 신뢰를 다지고 화해하는 과정을 밟지 않는 한, 갑작스런 대박(번영)은 절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갈라졌던 나라들이 갑자기 통합될 때, 평화와 번영보다는 내전 수준의 극심한 혼란에 빠지기 쉽다는 게 세계 역사의 교훈 아닌가.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은 남북대화가 거의 단절된 가운데 통일의 ‘목표’만 불쑥 제시했다는 점에서 좀 생뚱맞다는 느낌이다. 지난 한 해 남북관계를 돌이켜보면 개성공단이 문을 닫았다가 겨우 재가동했을 따름이지 교류협력은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모처럼 당국간 회담을 논의했지만 엉뚱하게 대표자 ‘급’을 따지다가 회담이 무산되기도 했다. 이번에 박 대통령이 제의한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관계 경색을 풀기에 극히 초보적인 단계에 불과하다.
대통령 발언을 보면 장성택 처형 이후 강력하게 부상한 북한붕괴론과 맞닿은 것 아닌가라는 의문도 든다. 나중에 부인했지만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지난 연말 “2015년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의 조국 통일”을 주장했다고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1월1일부터 ‘통일이 미래다’라는 특집을 다뤘는데, 이 기획은 “눈사태처럼 올 통일을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북한은 중국의 속국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전 재산을 한반도에 투자하겠다는 외국 투자가 사례를 거론한 것은 <조선일보>를 읽고 한 것이었다. 배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조선일보와 박근혜 대통령, 남재준 국정원장이 동일 코드로 움직이고 있다”고 브리핑했는데, 그렇게 볼 구석이 있다.
북한붕괴론은 현실성이 약하고 논리 비약도 심하다. 북한 정세의 급변 전망이 어긋난 게 한두 번이 아니고, 설령 북한에 어떤 변화가 생긴다 해도 평화로운 통일이나 대박을 가져오긴커녕 긴장 고조와 국제분쟁 같은 재앙의 가능성이 훨씬 크다. 혹시라도 대통령까지 이런 생각으로 기울고 있다면 크게 걱정할 일이다. 대통령의 새해 벽두 통일에 대한 언급이 아무쪼록 그릇된 정책 판단으로 잘못 발전하지 말고,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일깨워주는 레토릭 수준에 머물기를 기대한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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