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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담배를 끊는 이유 / 김류미

등록 2014-01-12 19:13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저자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저자
연말부터 금연을 시작했다. 주변에 독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금연에 성공하는 경우를 꽤 봤다. 애당초 담배를 피울 이유가 없는 이들이 특정 시기 흡연을 잠깐 경험한 뒤 필요에 의해 ‘담배가 없는 삶’을 택한 게 아닌가 싶은 경우도 있었다. 마치 어릴 적 흡연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나이가 들면 담배를 끊게 될 거라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 담배를 피웠던가. 백 가지 해악을 따져봐도 나에게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피울 이유는 충분했다. 건강을 담보로 그것을 얻어야 하냐고 물을 수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자본을 가지지 못한 어린 여자에게 그것들은 ‘너무나 절실한 것’이었다. 심지어 이건 ‘노동에 대한 휴식’에도 적용된다. 시장에서 일을 할 때, 켜켜이 갠 티셔츠 사이에 꿇어앉아, 스팸김치볶음 백반을 시켜 먹다가도 손님이 옷에 대해 물어보면 바로 몸을 일으켰다. “어머, 언니~ 이게 디자인이 잘 빠져서 가게에서 제일 잘 나가요~”를 시원하게 뽑아주며 입안에 있던 음식들을 삼키고 티슈로 입을 훔쳤다. 편의점, 피시방, 식당, 패스트푸드점, 노점상…. 정말 많은 서비스업에서 밥 먹는 일은 근무 시간에 포함되고 ‘빨리 먹기 노동’이 된다. ‘식사 시간’이란 규격화된 노동 현장이나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에게나 존재했다. 그런데 흡연은 좀 달랐다. 옆 다이(폭이 좁은 의류 상가의 가게 단위) 언니들에게 “언니 저 식후땡 좀 다녀올게요~”라고 외치고 흡연실로 달려가면 그 5분은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처럼 부재가 허락된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지만, 현실은 담배 피울 때만큼은 사람도 안 건드리더라. 그러니 대기업들이 금연 캠페인을 벌여 시간을 통제하고, 이걸 인사고과에 반영하려 드는 게 아닌가.

중요도가 높은 정보일수록 비공식적인 채널에서 유통된다. 흡연실로 향하는 길에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회사의 중요한 결정, 사내 정치도 이때 일어난다. 오죽하면 이직 후 회사에 빠르게 적응하는 방법이 흡연실 출입이라고 할까. 심지어 진보판 행사를 참가해봐도 지루하고 형식적인 강연을, 쉬는 시간이라는 이름의 흡연 시간 5분이 확실하게 대신해 정리해준다. 게다가 불을 빌리며 나누는 인사는 뻘쭘하게 주고받는 명함보다 훨씬 유용하다.

신입생이던 10년 전, 여성학 교수는 “이제는 세계적으로 금연이 트렌드”라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는 꾸준히 ‘흡연의 가치’가 약해졌다. 금연 캠페인을 벌이는 기업과 흡연하지 않는 젊은 직원들에 의해 흡연실 정치는 이전만큼 힘을 얻지 못하고, ‘흡연자=자기관리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선배들을 쫓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금연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사람’이라는 핑계는 옛말이 되어 버렸다.

‘담배 피우는 여자’로 누린 것들이 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물론 얻는 것만큼 잃은 것도 있었다.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가고 싶다. 추운 바깥에서 떨며 인사를 나눈 분들과, 담배 피우며 속을 보여준 상사들에게 고맙다. 맞담배란 건방진 것으로 여겨졌기에 흡연실이 어떤 의미로는 평등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더 솔직한 테이블과 공적인 발화로 그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대등하게 타자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노동자가 사람일 수 있던 시간이 ‘담배 타임’이었던 것처럼, 계급과 상관없이 그들 모두가 피우는 담배의 가격이 1000원도 차이가 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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