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과 작가
아주 어렸을 때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다. 중남미 밀림에 처박혀 잊혀진 고대 문자를 해독하는 것이 꿈이었다. 이상하게 문자에 집착했다. 고고학이라면 모래에 파묻힌 오래된 도시라든지, 깨진 항아리와 미라를 제일 먼저 떠올릴 법도 한데 나를 사로잡은 것은 세 가지 문자가 새겨진 로제타스톤이었다. 단지 그곳에서 사용된 문자가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수메르 문명을 좋아했다. 물론 대부분의 어린 시절의 꿈이 그렇듯이 유치했고, 별다른 슬픔 없이 잊혀졌다. 대영박물관에서 로제타스톤을 실제로 맞닥뜨렸을 때, 솔직히 별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몇 초쯤 바라보다가, 소란스러운 관광객들을 피해 서둘러 전시관을 떠났다.
한참 지난 이야기를 다시 떠올린 것은, 요즘 내가 소박한 방식으로 옛꿈을 이루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서다. 나는 요새 번역 ‘알바’를 한다. 고대 문자에 집착하던 어린 시절, 뭔가를 땅에서 파내기보다는 일종의 번역가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소설가가 되는 과정에서 나는 마치 외국어를 배우듯, 의도적으로 나의 한국어를 백지상태에서부터 쌓아올렸다. 내가 사용하는 한국어가 싫었기 때문이다. 내 한국어가 어설픈 번역어투, 고루한 일본식 한자, 논술식 글쓰기로 더럽혀져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깨끗하게 지우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일부러 더 서툴러지고 더듬거렸다. 처음 배우는 외국어처럼 생경하고 인위적인 것으로 모국어를 대하려고 애썼다. 완벽하게 납득할 수 있는 단어들만으로 문장을 구성했다. 단순하고 쉽게, 거의 모자라 보이게 쓸 것. 그때 나는 이오덕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또 외국어들을 배우면서, 그리고 더 강해져가는 영어 열풍 때문에 의미를 잃고 말았다. 언젠가부터 생활 속에서 얻는 문자 정보의 절반 이상이 영어로 된 것이다. 카페에 앉은 한국인들이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수십년 전에도 영어나 일본어, 한자는 한국어에 큰 영향을 미쳤고, 외국어에 능수능란하면서도 빼어난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더 이상 그런 사람들은 존재하지도, 나타나지도 않을 것 같다. 새로운 세대의 무능 때문이라기보다는 올바른 한국어라는 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어를 듣거나 읽다 보면 소통의 도구 역할을 완전히 잃었다는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학술어든 생활어든 정체불명의 케이팝 가사와 비슷한 느낌이다. 새롭고 이질적인 단어와 표현이 너무도 많이 또 빨리 쏟아져 들어오는 통에 한국어라는 틀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의미와 사용법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으니 공식적인 발화를 이해할 때도 눈치와 느낌을 동원해야 한다. 그러니 한국 사회에서 소통이라는 것은 초급 영어회화 수업의 풍경 같다.
외국어를 배척하고 순수한 한국어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어가 결정적 변형의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어는 주변부 언어다. 중심부 언어가 보편성을 사유할 때, 주변부 언어는 그에 대한 탄력성을 발달시킨다. 그런데 오랫동안 한자 문명권 언어에 대한 탄력성을 발달시켜온 한국어는 영어라는 생경한 언어에 의해 처음 보는 문제들에 맞닥뜨린 것이다. 먼 미래에도 한국어가 살아남는다면, 그건 지금까지의 한국어와 굉장히 다를 것 같다. 언어는 사고의 방식과 범위를 구획하므로 그때 한국인들은 매우 다른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할 것이다. 그 사람들은 지금, 이 이상한 시기를 어떤 식으로 기억하게 될까. 얼치기 번역가들의 시대로 여기지 않을까. 이질적 언어들이 결합하는 순간의 말은 필연적으로 어색한 번역의 형태를 띠게 되므로.
김사과 작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