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호 미디어연구가
지난 수년간 은근히 널리 유행한 조어법 가운데 하나는 뒤에 숫자를 붙여서 혁신의 이미지를 과시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뿌려졌고 1주년 기념으로 요즘 새삼 다시 주목을 받는 ‘정부3.0’이 좋은 예다. “일방향 소통의 정부1.0을 넘어, 쌍방향 소통의 정부2.0을 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별 맞춤행복을 지향하는 정부3.0 시대”라는 표어로, 듣고 있자면 선진적 세상을 박수로 맞이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조어법은 마치 소프트웨어의 새 버전 같은 체계적 느낌을 주기에 크게 히트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채용되었는데, 흔히 알려져 있듯 컴퓨터 교과서 시리즈로 유명한 오라일리 미디어에서 웹2.0이라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뿌리면서 시작되었다. 웹2.0은 참여와 협력으로 가득하며, 개별 사이트와 웹페이지 너머 역동적으로 서로 연동되는 구성 요소들이 강조된 웹 환경을 새롭고 매력적인 것으로 포장하고자 도입된 말이다. 위키백과의 협업 구조부터 블로그 연결의 대안미디어 효과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멋진 신세계를 호소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에서 오바마 정부가 추진한 ‘gov2.0’ 프로젝트의 경우는 웹2.0의 비유를 고스란히 들고 왔다. 전폭적 공공 자료 온라인 공개와 각종 정부 사이트의 오픈 소스 플랫폼 채용으로 정부, 시민, 산업계가 투명하고 효율적인 정보 교류와 정책 관련 협업을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2.0이라는 틀은 두 가지 문제를 가져온다. 하나는 과거 상황을 1.0이라고 억지로 끼워 맞춰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익숙해질 무렵 3.0을 고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전과 뚜렷하게 달라졌다고 우겨야 하고, 또한 별반 달라질 것 없고 합의된 바 없어도 다시 달라진 무언가를 내세워야 한다. 당장 웹3.0이라는 표현도 생긴 지 꽤 오래되었는데, 의미 인식형 웹을 지칭하는지, 한층 보편화된 분산 처리를 말하는지, 컴퓨터를 넘어 모든 기기가 맞물리는 속칭 ‘사물의 인터넷’을 말하는지 딱히 합의점이 없이 표류하고 있다. 결국 필연적으로, 아직 2.0도 충족하지 못했는데 오로지 차별화로 장사하기 위해 3.0을 내세운다는 비판을 받게 되어 있다. 비유하자면, ‘원조 할매집’이라고 쓴 간판은 어떻게든 넘어가지만 ‘진짜 원조 할매집’ 간판을 보면 결국 혀를 차고 마는 것이다.
이렇듯 정부3.0 개념은 처음부터 함정 속에서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화려한 간판 뒤에 별 새로울 것이 없다면 한심스럽기는 할지언정 상대적으로 큰 문제가 아니다. 현 정권이 내세우는 정부3.0 개념에 담겨 있는 내용이 부처 간 칸막이 내리기든 대민 서비스 강화든 그저 원래 정부가 했어야 하는 것들의 동어반복이라는 지적은 이미 수도 없이 나왔다. 전임 정권은 정부2.0을 표방하고도 정보 공개와 소통의 협치 측면에서 딱히 개선이 없었다. 그런 부분을 뭉개고 다시 새 버전을 논하는 것의 허망함에 대한 비판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지당한 발전 방향들을 이번에는 정말 수행해내기 위한 기획이라면 정부3.0을 자처하든 그 이상의 숫자를 붙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문제가 심각해지는 경우는 간판만 부여잡고 그냥 수행을 안 하는 것이다. 간판만 부여잡고는 정작 관련 입법이든 조직 개편이든 재원 확보든 세부 실험이든 대체로 방치하는 것 말이다. 이름이 뭐가 되었든 표어 너머 실제 내용을 이제는 제발 좀 해보시라고 응원이라도 보내야 할 것만 같다.
김낙호 미디어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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