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후일담 문학’으로 문학소녀 시절을 보낸 나는, 대학에 들어가 몰락해버린 학생운동의 현실을 보며 ‘보통 학우’의 위치를 택했다. ‘96년 연세대 사태’가 무엇인지 물어볼 이도, 찾아볼 곳도 없어 한참을 뒤졌던 기억이 난다. 따라간 집회의 ‘벅차오르는 뜨거움’을 느끼면서도 이 ‘흥분’이 교회에서 시시엠(CCM)을 부르며 ‘옆에 신이 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심리적 효과와 무엇이 다른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계승할 수 없는 열사 정신은 순수했고, 역사의 진보였으며, 현실의 부끄러움을 잊지 않고 살아갈 ‘올바름’의 이정표가 되어주었지만, 신학과 교수는 신입생들에게 말했다. “같은 찬송 백 번 부르며 박수 쳐봐. 그런 카타르시스가 안 느껴지면 그게 이상한 거지.”
책을 읽고 시사를 말하고 스스로 사유하며 성찰하는 삶을 살겠다는 개인에게, ‘문제 인식’은 필연적인 단계다. 그런데 이렇게 느낀 ‘사회 문제’를 어떤 식으로 다룰 수 있을 것인가. 개인이 느끼는 사회 문제의 우선순위는 종종 논쟁 대상이 되곤 한다. 계급 대 세대, 계급 대 여성, 녹색의 가치, 격차 사회의 계급 문제, 여성 문제, 대기업 문제, 사법기관의 권력 남용, 심지어 도서정가제까지. 사회에는 너무 많은 문제가 있고, 어느새 ‘민주 시민’의 의무란 자기 우선순위에 해당하는 문제들을 여러 방법으로 지지하고 후원해주는 것이 돼버렸다.
가치의 우선순위는 변한다.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는 ‘88만원 세대’ 문제 해결을 내건 조직에 몸을 담았다. 소셜 벤처와 소셜 임팩트, 사회적 기업 등의 단어들이 막 등장했을 때였다. 최근엔 이 견고한 사회 속에서 그나마 ‘기존 권위를 넘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플랫폼’ 자체가 이런 공간들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스타트업, 아이티(IT), 에스엔에스(SNS), 사회적 경제, 대안언론 등 어떤 형태로 표현되건 간에, 경직된 관료제, 대기업, 정부기관, 심지어 관성적으로 변해버린 진보진영을 넘어서는 그 가능성을 나는 이 ‘대안적인 판’에서 느낀다.
모두가 사회를 바꾸자고 말한다. 첫번째 방법은 정치 참여일 것이다. 참여도에 따라 투표, 정당 가입과 후원, 정치 활동가로 나뉜다. 두번째 방법은 대안적인 조직을 통한 실현이다. 엔지오와 시민단체나 각종 협회와 단체가 여기 해당한다. 세번째는 비즈니스의 실천이다. 가치를 내걸며 비즈니스를 하는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이다. 그라민 은행은 빈곤을 지원하는 선순환적인 금융 모델을 만들어냈다. 성공한 사업가가 스포츠나 출판 등의 분야를 지원할 때, 한계를 알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쉬는 이유다.
스타트업이나 사회적 기업의 첫번째 과제는 ‘문제를 찾아라!’다. 사회에 존재하는 비효율을 해결하는 기술적 전문성과 파급 효과가 경제가치로 환산되기 때문이다. 최근엔 ‘소셜 픽션’이란 개념도 등장했다. 에스에프(SF)소설이 기술을 변화시켜 세상을 바꾼 것처럼, 사회에 대해 상상하면 현실을 바꾸어 낼 수 있으리라는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미래 기획 방법론’이다. 아이티에서는 ‘오픈 소스’라고 해서 전통적으로 집단지성을 활용해 기술을 발전시켜온 경험도 있다. 에스엔에스에서 현실을 한탄하는 데 멈추지 말고, 뜻있는 사람들이 현실로, 비즈니스로 나오길 빌어본다. 에스엔에스와 온라인에 모인 분노의 감정들과 잉여력이 너무나 아깝고 무섭기에. 어떤 방법이든 좋겠다. 뭐라도 해보자. 할 수 있다면, 여러 사람이 모여 가급적 훌륭하게!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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