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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국적 특색의 신자유주의

등록 2014-03-18 19:25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흥미로운 현상 하나가 발견된다. 우리가 흔히 ‘선진국’이라고 높여 부르는 세계체제 핵심부 국가들은 과거에 국민국가의 상징이었던 징병제를 줄줄이 폐지한다. 애당초 일본과 한국 징병제의 모델이었던 독일은 2011년부터 징병제를 폐지했으며,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프랑스 징병제는 이미 2001년에 없어졌다. 유럽에서 징병제가 아직 남은 나라들은 그리스나 스위스, 덴마크, 오스트리아, 핀란드, 노르웨이 등 정도인데, 노르웨이의 경우 실제 현역 복무율은 이제 20% 이하로 떨어지고 말았다. 즉, 명목상의 징병제는 존재해도 대다수 남성들은 9개월에서 11개월 정도의 의무 복무를 실제로는 하지 않는다.

핵심부, 즉 북미, 일본, 그리고 유럽에서 징병제는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지만, 터키나 한국 등 일부 준주변부 국가에서는 오히려 징병제를 중심으로 하는 군사주의 분위기가 유지될 뿐만 아니라 강화되기까지 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눈에 띈다. ‘군기 풀린’ 노르웨이 따위와 대조적으로, 한국 남성들의 현역 복무율은 89% 정도다. 거기에다 세계의 산업화된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대체복무제는 여전히 없다. 지난해 말 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8%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에 찬성했음에도 박근혜 정부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 아니, 그 반대로 안보주의 광풍으로 군사주의적 분위기를 부추기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

2014년 2월4일, 한 사설 극기훈련캠프에서 화생방 훈련을 받으면서 연기가 가득 찬 방에서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괴로워하는 초등학생들의 사진이 여러 매체에 게재돼 파문을 일으켰다. 10살 안팎의 아이들에게 고문을 방불케 하는 전쟁훈련을 시키고도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그 캠프 운영 업체나 학교 당국 등을 보면, 광적 군사주의의 분위기란 무엇인지 실감난다. 초등학교부터 아이들로 하여금 미래의 군인이 되게끔 심신의 준비를 미리 시켜놓는 이런 극기훈련캠프나 해병대캠프는 전국적으로 수십개나 있으며, 그들은 이번 정권의 안보주의 바람을 타고 성황을 이룬다. 작년 여름처럼 그런 곳에서 고교생 5명이 사고사를 당해도 그 영업에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미래의 총알받이 준비 과정이라는 숭고함(?)이 아이들의 고통을 정당화시키는 모양이다.

한국 보수주의자들이 열심히 ‘벤치마킹’하려는 핵심부 국가들에서 신자유주의를 수반하는 극단적 개인주의는 징병제의 원리와 정면충돌한다. 사회에 더는 기대지 못해 무한경쟁의 질풍노도를 혼자 힘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젊은이들로서는, 그들에게 가면 갈수록 복지서비스를 덜 해주는 국가를 위해서 인생의 소중한 1년을 왜 낭비해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되어지지 않는다. 또 일면으로 신자유주의 시대 전쟁들의 대부분은 지정학적 위치가 중요하거나(아프가니스탄) 많은 자원을 보유하는(말리: 우라늄; 이라크와 리비아: 석유 및 가스) 주변부 국가들에 대한 불법 침략의 형태를 띠기에 명분 없는 자원 약탈에 동원되기 어려운 징병제 군대보다 명분에 무관심한 살인전문가 집단인 모병제 군대는 훨씬 편하기도 한다. 결국 지배자의 이해관계와 피지배층의 성향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징병제, 즉 ‘국민’ 집단 전체의 군사화가 그 종언을 고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유럽과 사뭇 다르다. 1987년 6월에는 일시적으로 혁명적 상황이 조성됐지만 미완의 혁명으로 끝난 만큼, 즉 민주혁명을 거치지 않은 만큼 한국에서 피지배자들은 국가와 감히(?) 거래를 하지 못한다. 한국의 공공 복지지출(국민총생산의 약 9%)은 프랑스(33%)나 스웨덴(28%)과는 비교조차 하기 어렵고 터키(12%)보다 더 낮은 수준인데도, 즉 산업화된 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낮은 편에 속해도 한국 젊은이들은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국가를 지키려고 내가 왜 21개월이나 고생해야 하냐”고 공공연하게 따지지 못한다. 우리가 국가와 동등한 입장에서 사회적 계약을 맺어 거래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에 여전히 복속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일면으로 한국 지배자들은 유럽과 달리 군대를 군사적 도구로만 생각하지 않기도 한다. 군사 대치 중인 북한에서도 군에서 특권층에 속하지 않는 젊은 남성들을 정치적으로 사회화시키는 것처럼, 남한에서도 군은 일차적으로 제2고등학교, 즉 사회화기관이다. 거기에서는 ‘무기’ 그 자체보다는 신체의 유순함, 즉 구령에 따라서 조건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여지는 것을 익히고, 나아가서는 별다른 개인적 평가 없이 ‘윗사람’의 말을 무조건 듣는 것, 어떤 불합리한 상황이 만들어져도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것, 그리고 때가 되면 남 위에서도 군림해보는 것을 배운다. 폭언과 무의미한 명령에 지쳐서 반항심이라도 생긴다면? 군목이나 군법사, 군신부에게 가서 적응과 인내야말로 신 내지 부처님의 뜻이라는 의미의 ‘인내심 주사’를 맞아 계속 버티면 되는 것이다.

유럽 같은 핵심부든 한국 같은 준주변부든 신자유주의 시대는 개체들의 원자화, 개개인의 소외와 고독의 증폭, 그리고 사회적 연대의 파괴를 똑같이 의미한다. 그러나 각 지역의 경제적 상황, 그리고 각국 지배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그 구체적 사정은 서로서로 꽤나 다르다. 상당히 탈산업화된 유럽에서야 지배자들은 국가 자체까지도 상대화시키는 개인주의의 범람을 허용할 수 있지만, 아직도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력이 뒷받침해주는 제조업의 제품을 팔아서 자본을 축적해야 하는 한국 재벌들로서는 일단 피지배자들을 일차적으로 ‘훈련’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 아직도 임금근로자 중에서는 400만명이나 4대 사회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질병과 실업, 산재에 그대로 노출돼 있으며, 평균 연간 노동시간이 세계 최장인 2092시간에 이르고 연간 산재 사망자가 2000명이나 넘어 터키, 멕시코에 이어 세계 3위를 자랑(?)하는 한국에서는 피지배자들의 절망적인 반항적 움직임이나 대규모 반항 행동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줄이고 약탈과 배제를 당하는 이들이 여전히 맞교대나 끝이 보이지 않는 야근, 특근, 잔업을 순순히 받아들이게끔 하자면 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들에게 일찌감치 조건반사적 복종의 훈련, 즉 순치 훈련을 군에서 시키는 것이다. 한국 군대는 군사기관인 동시에 종속적 신자유주의를 지탱해주는 유순한 ‘인력’의 양성기관이다.

고통스러운 ‘기마자세’를 3시간이나 참아내고 100㎞ 야간행군을 견뎌야 한다. ‘우리 회사 사랑’을 신체적으로(?) 익히는 고통스러운 훈련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가끔 인터넷에서 공개돼도 해당 기업 관계자들은 “우리 전통”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난다. 우리에게 전국 병영화는 비공식적 ‘국시’에 해당된다.

그러나 꽃다운 나이에 연애나 즐기고 취업준비나 해야 하는 청년들을 사회와 격리시켜 반복적인 복종 훈련을 시키는 것은 사실 개개인으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매우 가혹한 처사다.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그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맞다, 바깥 사회까지 군사화시켜야 병영 속에 갇히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일반사회 전체에서 ‘군기 잡는’ 분위기는 박근혜 정권 이전에도 있어왔지만 안보주의 정권의 이데올로기에 힘입어 강화됐다. 신자유주의 시대판 새마을운동이라고 할 각종의 ‘극기훈련’은 초등학생부터 초로의 직장인까지 종종 받아 ‘한시적 유사 군인’이 되는 것은 하나의 커다란 병영을 방불케 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무릎을 굽히고 양팔을 앞으로 쭉 뻗은 고통스러운 ‘기마자세’를 3시간이나 참으면서 ‘주인인식’을 복창해야 하는 신한은행의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이나 100㎞ 야간행군을 골자로 하는 국민은행의 연수 프로그램은 웬만한 군사훈련을 능가할 정도다. ‘우리 회사 사랑’을 신체적으로(?) 익히는 고통스러운 훈련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가끔 인터넷에서 공개돼도 해당 기업 관계자들은 “우리 전통”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나는 사실로 미루어봐도 우리에게 전국 병영화는 비공식적 ‘국시’에 해당된다.

한국적 신자유주의는 개개인의 원자화와 군사주의의 조합을 특색으로 한다. 국가와 군대, 그리고 기업의 ‘조직문화’는 소외된 개개인을 같이 연결시키면서 체제의 이데올로기를 사회통념으로 만든다. 수평적 연대를 통해 이 괴물적 행태에 맞서지 않으면 우리 자손들은 대대로 ‘기마자세’로 ‘기업사랑’을 외치며 살아야 할 것이다.

한국적 신자유주의는 개개인의 원자화와 유신시절 식 군사주의의 조합을 특색으로 한다. 국가와 군대, 그리고 기업의 ‘조직문화’는 서로로부터 소외된 개개인을 같이 연결시키면서 체제의 이데올로기를 사회통념으로 만든다. 우리가 수평적 연대를 통해 이 괴물적 행태에 맞서지 않으면 우리 자손들은 대대로 ‘기마자세’로 ‘기업사랑’을 외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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