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희 언론인
종북몰이의 흙먼지 속에 무슨 전자결재까지 받아가며 해산을 청구한 정부가 우선 경솔했다.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 핵심적 사항 같다. 김일성이 사용한 적이 있다는 것이 죄라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인민’, ‘민중’ 등의 용어도 걸릴라. 사법부는 되도록 적게, 아주 적게 정치에 간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영구차가 국회의사당을 경유하는 것을 맞이하기 위해 갔다가 우연히 통합진보당의 이상규 의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서울 관악을구 출신의 지역구 의원이다. 민주노동당의 간부들은 여럿 알고 지냈으나 그 후의 통합진보당 간부와 만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통합진보당 문제를 새삼 곰곰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신문사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죽산 조봉암의 진보당 사건이 일어났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법살인이었다. 그때 20대의 신경림 시인은 <그날>이라는 시를 써서 분노를 나타냈다. 망우리 산마루에 있는 묘소에서의 추모행사에 자주 참석했다. 이용훈 원장의 대법원이 그의 무죄를 선고하여 반세기나 뒤늦게 신원될 때까지 말이다.
이번 이석기 의원을 중심으로 한 통합진보당 사건이 났을 때 나는 그들을 전혀 몰랐기에 당혹스러웠다. 특히 언론이 경기동부그룹으로 분류하는 사람들에 관해서는 더했다.
그러던 차에 이상규 의원을 만나게 되어 처음으로 그 궁금했던 실체와 직접 실감있게 스치게 된 것이다.
두 가지다. 이석기 의원 중심의 이른바 아르오(RO)에 대한 재판. 그리고 통합진보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해산 여부 공판이다. 나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언론에 보도된 이석기 의원의 언동이 심하다 싶었다. 무언가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1심의 재판 결과를 보고는 좀 과한 형량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음모’가 아닌 ‘위법’ 정도가 아닌가 싶다. 내가 1심 재판을 놓고 전문적인 법률 시비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법과대학을 나왔지만 언론 등에 종사했지 재판의 실제는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전한 사회상식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형식적인 법률보다 실질적인 정의를 생각한다.
기소 내용이 얼마간 허술하여 의문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철이 없다시피 함부로 떠들어댄 것 같기는 한데 혁명음모적인 조직적 활동이라기에는 너무도 희극적이다. “올바른 말을 그렇게 싸가지 없이 한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내가 만난 한 군사평론가는 “만약에 이석기가 좌파 아르오라면, 남재준은 우파 아르오라 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2015년에 통일이 된다고 그것을 위해 다같이 죽자고 맹세하며 무슨 노래를 합창하였다니 그것은 결과적으로 전쟁을 하자는 집단의 단합대회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다. 그 평론가의 익살이 그럴듯하다.
정부가 청구한 정당해산 헌법재판의 경우는 많이 다르다. 이승만 정권이 죽산의 진보당을 해산한 일이 연상된다. 정말 정적을 때려잡기 위한 사법살인이었고 공보실에 의한 어이없는 정당해산 발표였다.
이번 일에 결론을 먼저 말하면, 작다고 할 수 없는 국회의 소수파 정당을 헌법재판에 의해 해산해서는 안 되고, 선거에서의 국민들의 표에 의한 심판에 맡기는 것이 민주정치의 이치에 맞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는 게 순리다.
종북몰이의 흙먼지 속에 졸속으로 억지논리를 펴며 무슨 전자결재까지 받아가며 해산을 청구한 정부가 우선 경솔했다. (여기서 전자결재도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검찰총장 찍어내기 등으로 검찰을 시녀화하다시피 한 공안검사 그룹은 국민의 신망을 잃었다. 잔재주를 부리는 음모의 냄새가 짙게 풍기고 있다. 그 수장이 누구인가.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 핵심적 사항 같다. 김일성이 사용한 적이 있다는 것이 죄라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인민’, ‘민중’ 등의 용어도 걸릴라. 아니, 퇴임하는 정홍원 총리는 이미 “민중은 사회주의 개념”이라고 한 모양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우리나라의 여러 정치인들이 이미 사용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도 쓴 바 있는 용어다.
진보정당은 영어로 ‘Progressive Party’이다. 그러니까 ‘진보적 정당’이다. 미국에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도 ‘진보적 정당’ 후보로 출마했었다.(그때는 낙선) ‘진보적 민주주의’를 문제삼는 일은 아마 언젠가는 세계적 코미디 사건 사전에도 오를 수 있겠다.
그리고 퍼즐 맞추기 이론이 나왔다. 정부 쪽 참고인이 편 이론인데, “하나하나의 사건은 크게 문제삼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이를 하나로 몰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면 위험성이 드러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다. 그럴듯하기도 하다. 그러나 정당을 해산하는 근거 논리로는 좀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자칫 억울한 결론이 내려질 수 있는 논리 구사가 아닌가. 분단된 민족의 통일 과정은, 법률적 차원에서는, 자기완결성을 갖는 각각의 법체계와 일정 부분 상충되기 마련이다. 일종의 지양(止揚)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조정·조화하는 게 분단시대 법이론의 지혜가 아닐까.
통합진보당 쪽에서는 ‘관심법’이 쓰여진다고 비난한다.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는가. 전에 텔레비전 드라마에 보니 궁예가 주문(呪文)을 외우며 ‘관심법’으로 사람을 골라 때려잡는 장면이 있었다. 그 ‘관심법’이 이 과학의 시대에 혹시라도 작용했다면 정말 큰일이다.
약간 추상적,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정치에서 독을 뺐으면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좀 싱거운 대통령이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하며 잘못을 자주 저지르고, 난데없이 독도를 방문하여 불씨를 되살리고….
거기에 비하여 볼 때 박근혜 대통령은 결연한 의지의 철저한 조치를 강퍅하게 휘두르는, 역시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독기가 있는 지도자라 하겠다. 그래서 그동안 반대세력, 마음에 안 드는 세력을 매몰차게 몰아붙여 왔다. 무서운 지도자다. 세월호 참사가 그 결과는 아니다. 그러나 그 참사를 계기로 많은 국민들은 독기 서린 통치 스타일을, 통치 방향의 잘못됨을 새삼 느끼게 되고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웃으면서 여유있게 너그럽게 통치를 해야 한다. 독기 서린 이미지가 아니라 인자한 이미지를 보여야 한다. 찬바람이 아닌 햇볕정치 말이다.
정치의 사법화(司法化)라고 보는 쪽도 있다. 정치에 사법부가 관계 안 될 수가 없지만, 정치와 사법부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최근 타이에서 벌어졌던 사법권의 전횡은 너무 심하다는 느낌이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홍역을 치른 일이 있다. 나는 정치에 맡겨둘 것은 되도록 맡겨두고 사법부는 되도록 적게, 아주 적게 간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생물학에서 동종교배보다 이종교배가 종(種)의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통합진보당과 같은 이종과의 경쟁이 우리 정치에 기여를 하리라고 보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제는 예외적이라 한다. 그 미국에서도 민주당의 진보파는 유럽의 사민당 등과 비슷한 정책을 따르고 있다. 클린턴-오바마 라인이 그렇다. 유럽에서는 대개 다당제로 으레 진보정당이 집권당이거나 제일 야당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남북 분단의 특수상황이므로 그들 나라들과 비슷해질 수는 없으나 진보정당이 최소한 원내교섭단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에 그만한 영향력이 있게 된다면 예를 들어 ‘통일대박’과 같은 주장은 맥을 못 출 것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칼럼은 ‘통일대박’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한반도에서 미국 군대가 없어지고, 그리고 미국 및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면, 통일 한반도를 내다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상태로 가는 길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이 화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빈익빈 현상의 역사적·통계학적 뒷받침이다.
아주 최근에는 한 국제기구가 우리나라 노동권 보장 수준이 세계 최하위 5등급이라 분류하였다. 우리가 역시 이미 알고 있는 대로다.
남재준의 국정원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왜곡, 공개해 한국 정치를 1년 넘게 뒤흔들었다. 그리고 새누리당 사무총장인 윤상현 의원은 이제 와서 잘못되었다고 시인했다.
남재준의 국정원은 또한 서울시 공무원을 간첩으로 조작하려 하였음이 드러났다.
남재준의 국정원은 그리고…….
남재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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