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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별기고] 스포츠에서 인생을 본다 / 유홍준

등록 2014-06-12 18:26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선수들이여, 떨 것 없다. 정정당당히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애틀랜타 올림픽 때 북한의 17살 소녀 계순희가 다무라 료코를 엎어뜨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때 계순희는 “저는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런 투지로 뛰면 된다. 우리 선수들의 건투를 빈다.
드디어 2014 브라질 월드컵의 막이 올랐다. 아직 세월호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았고, 6·4 지방선거의 뒷정리가 한창이어서 이를 맘껏 즐길 수 없는 상황이지만 외면하고 지낼 수도 없는 일이다. 세계인의 축제라는 월드컵 대회는 일정대로 열릴 것이고 내일모레면 한국과 러시아의 경기가 있다. 어쩔거나. 어차피 응원하면서 즐길 것이니 이참에 스포츠가 갖는 진정한 의미를 한번 새겨보고 싶다.

나는 어려서 운동경기를 좋아하였다. 동네 피구 선수였고, 키가 크고 동작이 빨라서 군대에서 축구 할 때면 골키퍼를 맡았다. 야구를 하면 1루수에 1번 타자를 도맡곤 했다. 대학 시절 교내 야구대회 때 우리 미학과는 남학생이 열댓명뿐인데 준우승을 하였고, 영남대 미대 시절 남자 교수가 12명뿐인데 4강까지 올라갔던 데는 내 실력도 일정한 공이 있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운동경기를 할 기회가 없어지게 되어 자연히 스포츠 관람으로 취미가 옮겨갔고 빅게임의 텔레비전 중계는 놓치지 않고 즐기고 있다. 나는 스포츠 경기 자체만이 아니라 운동선수의 일거수일투족에 많은 관심이 있다. 시카고의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이 은퇴할 때 한 스포츠 평론가가 “권투선수 알리보다는 잘했고, 축구선수 펠레만큼은 못했다”라고 평한 것을 보면서 그 폭넓은 비평에 무릎을 쳤다.

사람들은 운동이라는 것이 그저 체력과 훈련으로 다져진 기술 정도로 생각하고 운동선수에게는 어떤 심오한 사고가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거기에 온몸을 바치는 데에는 나름의 마음가짐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평소 논리적으로 말할 기회가 없을 뿐인데 결정적인 때는 즉발적인 감성으로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곤 한다.

김연아 선수가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편파적 판정으로 억울하게 은메달을 목에 걸면서도 의연한 자세를 보여준 것은 전세계에 한국인의 높은 도덕을 드러내 준 참으로 자랑스럽고 대견한 모습이었다. 당시 김연아 선수가 인터뷰를 하면서 “나보다 절실하게 금메달이 필요한 사람에게로 돌아갔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저처럼 인생을 달관한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을까 놀랍기만 했다.

88 서울올림픽 때 얘기다. 개최국인 우리는 당시 소련, 동독, 미국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하는 대기록을 남겼다. 당시 상황을 되돌아보면 폐막식 전날까지 우리는 금메달 11개로 6위였는데 마침 복싱 라이트미들급에서 박시헌 선수가 결승전에 올라가 있어 여기서 금메달을 따면 서독, 헝가리를 제치고 4위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작 시합에서 우리 선수는 누가 보아도 진 경기를 했다. 그런데 주심은 3 대 2로 이겼다고 박 선수의 손을 번쩍 들어주었다. 이때 기뻐하기는커녕 어리둥절해했던 박시헌 선수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 기자들이 박시헌 선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명예로운 은메달을 조국이 빼앗아갔다.” 그의 말을 발전시킨다면 우리는 명예로운 6위를 했음에도 치사한 4위를 한 나라로 기억에 남게 된 것이다.

스포츠의 기본 정신은 정정당당이지만 그것의 경기 외적인 운영에서는 불공정한 면이 많다. 특히 주최국의 텃세와 메달 집계 방식이 그렇다. 서구인의 신체에 잘 맞는 수영은 100미터, 200미터, 400미터 등에다 개구리처럼 가기, 나비처럼 날아가기, 뒤집어서 가기, 섞어서 가기, 제 맘대로 가기 등등을 모두 따로따로 해서 메달 수를 부풀려놓았다. 이에 비해 양궁에서 우리가 발군의 실력으로 메달을 독차지하자 50미터 종목을 없애버리고 남녀 개인 단체 4종목만 남겨놓았다.

이런 것들은 스포츠 정치꾼들의, 그야말로 ‘주최 측 농간’일 뿐 스포츠맨들은 오직 자기 자신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열악한 조건을 극복한 선수들의 뒷이야기는 정말로 감동적이다. 우리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 ‘우생순’ 이야기, 스키점프의 <국가대표> 같은 영화는 끝내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애틀랜타 올림픽 때 이런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아프리카의 한 육상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수상 소감을 말하면서 “기록은 나의 것이고 메달은 조국의 것이다”라고 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 때 에티오피아의 마라톤 선수 아베베가 맨발로 뛰어 금메달을 딴 것에 온 세계가 경악하였다. 최상의 조건에서 훈련받고 그 좋다는 스포츠화를 신고 뛴 서구 문명국 선수들을 보기 좋게 녹다운 시킨 것은 정말로 통쾌한 인간만세였다. 이처럼 숨은 상수가 곳곳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여섯번째 책에 ‘인생도처유상수’라는 말을 내걸었다.

요즘 나는 일본 답사기를 쓰느라고 교토에 자주 가고 있다. 확인해야 할 곳도 많고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해도 일본인들이 내세우는 명소는 글로 쓰든 안 쓰든 보아두어야 할 곳이 있기 때문이다.

교토의 서북쪽 아라시야마 산자락을 끼고 도는 가쓰라 강변은 교토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명소이다. 여기가 바로 교토가 산자수명처라고 자부하는 현장이다. 내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달이 강을 건너는 것 같다’는 시구에서 유래한 도월교(도게쓰 다리) 언저리가 바로 신라계 도래인 하타씨들이 제방을 쌓아 엄청난 습지였던 교토 분지를 옥토로 만들어 오늘의 교토가 이렇게 이루어졌음을 말해주는 역사적 현장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 아라시야마 도월교 가까이에는 덴류지(천룡사)라는 고찰이 있는데 이 절 뒤편은 엄청난 대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가 일본 죽도의 90퍼센트를 만들어낸다는 사가노의 죽림이다. 평소엔 그렇다는 사실만 알고 지나쳤는데 자세히 이 죽림의 내력을 조사해보니 이런 얘기가 나온다.

1936년 우리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던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본은 장대높이뛰기에서 오에 스에오 선수가 동메달을 땄는데 그가 사용한 장대는 바로 이곳 사가의 죽림에서 베어간 대나무 장대였다는 것이다. 아베베의 맨발에 비견할 만한 쾌거였다.

우리 축구로 말할 것 같으면 2002년 한일월드컵을 치르기 이전엔 잔디구장 하나 없이 뛰었다. 그런 열악한 조건에서 월드컵 4강을 이룬 것은 기적에 가까웠고 그 신화는 히딩크 감독의 지도력에 많이 빚을 졌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16강에 들어가느냐 못 가느냐를 놓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왕년에 4강을 했다는 것이 이렇게 부담스러울 수 없다.

헤겔은 논리학에서 이런 말을 했다. 형식을 규정하는 것은 내용이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형식은 다음 내용을 규정한다고. 그리고 과도한 형식은 내용을 변질시키기도 하고 붕괴시키기도 한다고.

그러나 선수들이여, 떨 것 없다. 정정당당히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형식을 규정하는 것은 분명 내용일지니 이제까지 해 온 그대로 최선을 다하면 국민들은 그 노력과 마음을 알아줄 것이다. 요행을 바랄 필요도 없다. 행운도 노력의 결실인 경우가 많다.

애틀랜타 올림픽 때 여자 유도에서 일본의 다무라 료코는 그때까지 50여 판의 공식 경기에서 단 한 판도 진 일이 없던 전설적인 선수였다. 그런데 북한의 17살 소녀 계순희 선수가 다무라 료코를 엎어뜨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때 계순희 선수는 인터뷰에서 수줍은 표정을 지으면서 “저는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다무라 료코는 패배를 인정하면서 “상대방 선수가 나보다 이기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그런 투지로 뛰면 된다. 우리 선수들의 건투를 빈다.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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