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태초의 비밀을 간직한 원시 중력파는 제 모습을 그리 호락호락 드러내지 않으려는 걸까. 널리 알려진 우주론 가설은 우주대폭발(빅뱅) 직후에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공간이 급속 팽창하는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우주가 생겨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급팽창 가설’을 뒷받침하는 원시 중력파(시공간의 출렁임)의 흔적을 관측했다는 미국 연구팀의 성과가 3월 전해지자, 우주론 가설을 입증하는 근거로 세계 언론의 조명을 크게 받았다. 하지만 환호는 이내 잦아들었다. 전파망원경 첨단설비로 관측한 이 신호가 과연 원시 중력파를 보여주는 흔적인지 확증하기 어렵다는 과학계의 의문이 이어졌다.
이런 소식은 먼저 작은 매체에 실리며 알려지더니 최근엔 과학계에 영향력이 큰 <네이처>와 <사이언스>까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보도를 내보낼 정도이니, 발표 당시의 환호는 이제 신중 모드로 바뀐 듯하다. 다른 후속 연구들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올지 지켜보자는 게 주된 분위기다.
광학망원경의 관측 자료는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지만 전파망원경으로 원시 중력파의 존재를 입증할 흔적을 찾는 일에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미약한 신호를 포착하고 정제하고 분석하는 복잡한 과정이 뒤따른다. 신호들 속에 다른 요인에 의해 생겼을 ‘잡음’ 효과도 섞일 수 있으니 그 잡음을 가려내야 한다. 그래서 연구 현장의 그림은 대중매체에서 흔히 보는 간명하고 멋진 그림과 달리 복잡할 수밖에 없다.
원시 중력파 관측 발표에 대한 의문 제기는 과학 활동의 연장이며 정상적인 검증 과정의 하나다. 연구 결과는 발표 뒤 곧바로 진리성을 얻는 게 아니라 때론 혹독한 검증을 거치며 살아남아 진리성을 획득하듯이, 이번 논란도 그런 과정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어찌 됐건 현재로선 빅뱅 우주론의 급팽창 가설을 입증할 원시 중력파의 흔적을 확증하는 데 좀 더 시간이 걸릴 듯하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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