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논설위원
“정치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받는 가장 큰 벌은 우리보다 못한 자들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회자한 말이다. 이 경구가 나오는 곳이 플라톤의 <국가> 제1권이다. 소크라테스가 트라시마코스와 논쟁하는 중에 하는 말인데, 이 말을 원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훌륭한 사람들이 통치하기를 거부할 때, 그들이 받는 가장 큰 벌은 자기들보다 못한 자들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통치할 자격이 되는 사람들은 웬만해선 통치하는 일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요즘 말로 하면 더러운 정치판에 끼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사는 진리를 구하고 영혼을 돌보는 데 있다. 통치에 적격인 사람들은 정치적 야심을 창피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보수를 듬뿍 받는다고 좋아하지도 않고 높은 관직에 올랐다고 명예로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니 권력을 이용해 나랏돈을 빼돌리는 짓 따위를 할 리 만무하다. 요컨대 그들이 통치로 얻는 이익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그들이 통치하겠다고 나선다면 이유는 뭘까. 도무지 통치에 맞지 않는 자들이 행하는 통치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대답이다.
지금 우리 정치현실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적실한 이야기도 없는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을 통치자의 첫째가는 품성으로 제시한다. 권력을 이용해 사욕을 채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름을 떨치고자 하는 욕망조차 부끄러움으로 여긴다. 자기에 대한 한량없는 관용과 사랑으로 무장한 기괴한 나르시시스트들, 얼굴이 두꺼운 것을 천부의 능력으로 아는 철면피들이 나랏일 한다고 나대는 오늘 이 ‘파렴치 공화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미덕이다. 조선총독부가 파견한 듯 식민지 노예의식을 퍼뜨리던 사람이 둘도 없는 애국자 행세를 하고, 학생들이 따라 배워선 안 될 짓만 하는 반교육 학자가 교육부 수장이 되겠다고 한다. 책임진다더니 주군 말 한마디에 주저앉아 “국가개조” 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칸트는 <영원한 평화>에서 ‘스스로 예외가 되려는 사람’을 공화국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다른 모든 사람은 법의 지배 아래 묶어두고 자기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있으려는 사람, 이 “악마의 종족”을 어떻게 하느냐에 나라의 성패가 달렸다. 이 사람들은 자기를 예외로 두려 하되, ‘은밀하게’ 그렇게 한다고 칸트는 말한다. “초점은 ‘은밀하게’라는 말에 있다. 드러내 놓고 할 경우 명백히 공동체의 이익에 반대하는 자리에 서기 때문이다. 공공의 적이 되고 마는 것이다.”(아렌트 <칸트 정치철학 강의>) 나쁜 짓도 대중의 눈치를 봐가며 한다는 얘기인데, 칸트가 우리 정치현실을 목격했다면 ‘은밀하게’라는 말을 덧붙일 이유를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나라 정치권력자들의 행태를 보면 은밀하기는커녕 누가 알아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특권의식이 뼛속까지 박힌 공공연한 예외주의자들이 한데 모여 리바이어던이 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소크라테스가 훌륭한 사람들이 통치하는 아름다운 나라를 그릴 때, 그런 나라가 바로 오리라고 믿었던 건 아니다. 트라시마코스 말대로 ‘강자의 이익이 정의로 둔갑하는 것’이 정치현실이라는 것을 소크라테스도 모르지 않았다. 진실한 사람들은 좀처럼 나서려 하지 않고 낯 두꺼운 자들이 활보하는 곳이 현실 정치다.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돌아서 버리면 정치판은 누가 더 뻔뻔한지 겨루는 경기장과 다를 바 없게 되고, 국민은 평균치의 도덕역량에도 미달하는 자들의 지배를 받는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 이 나라가 그런 꼴이다. 썩은 물을 그대로 두니 악취가 가시지 않는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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