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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별기고] 서울법대 동맹휴학… 잊혀진 4·19의 전사 / 남재희

등록 2014-07-31 18:23수정 2014-07-31 20:34

남재희 언론인
남재희 언론인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강석군이 서울법대에 부정 편입학을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는 기사가 났다. 학생총회에서 스트라이크는 즉각 가결되었다. 당시 법대생이 입에 달고 살던 모토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Fiat Justitia, Ruat Caelum)였다. 어쩐지 요즘은 그런 말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1957년 늦여름 구독하던 <동아일보>에 1단으로 작게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강석군이 서울법대에 부정 편입학을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는 기사가 났다. 당시 국회의장이자 집권 여당인 자유당의 실권자인 이기붕씨의 아들이기도 하다. 이어서 동아일보의 가십난에 서울법대 교수들 사이에 이강석군의 문제를 놓고 의견이 갈려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때 마침 고향인 청주에 가 있던 나에게 법대 학생위원장인 이강혁군으로부터 “지급 상경”이란 전보가 왔다. 당시 서울법대는 한 학년이 250명 가까이 되었다. 한 학년에서 학생회 대의원이 4명씩. 3학년 대의원에 학생회 위원장과 부위원장 출마 자격이 부여된다. 그때는 부위원장 출마자가 없어 차점자가 부위원장이 되었었다. 시골 출신인 나는 무모하게도 위원장에 도전하여 차점으로 부위원장에 낙착되었다.

급히 상경하여 학교에 도착하니 저녁 무렵인데 구내식당에서 운영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니 그때까지 부정 편입학 반대 동맹휴학 단행파와 신중파가 반반으로 갈려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모두들 나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나를 바라본다.

나는 동아일보 기사에 의해 이미 입력이 되어 있기도 하고, 젊은 혈기도 있고 하여, 서슴없이 동맹휴학 쪽에 가담했다. 스트라이크는 즉각 의결되었다.

그러자 위원장인 이강혁군(나중에 한국외대 총장)이 나에게 자기의 딱한 사정을 털어놓는다. 자기와 이강석군은 동성·동본·동항렬이어서 차마 전면에 나설 수 없으니 나보고 위원장 대행을 해달라는 것이다.

곧 행동 개시다. 경찰의 눈을 피하려면 은밀한 모의 장소가 필요하다. 종로3가의 적선지대가 선정되었다. 방 하나를 빌려 밤늦도록 계획을 세웠다. 열명 가까이가 참여했던 것 같은데 마지막에 보니 핵심 행동대는 나와 3학년 김종호군(나중에 내무부 장관, 국회부의장), 2학년 박양식군(나중에 영남대 교수) 등 3명으로 압축되었다.

다음날이 화요일. 마침 대학신문이 나온 날이라 김종호군이 창구에서 그것을 배포하며 아주 은밀하게 학생총회 개최를 알렸다. 2층의 제일 큰 강의실에서 열린 총회에는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가하였다. 동맹휴학을 하자는 연설은 내 담당이었다. 어설픈 선동연설이지만 스트라이크는 즉각 가결되었다. 그 당시 법대생이 입에 달고 살던 모토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Fiat Justitia, Ruat Caelum)였다. 어쩐지 요즘은 그런 말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학생회 간부들은 학교로 가는 길목에 배치되어 맹휴를 모르는 학생들에게 귀띔을 하였다. 화요일의 결의로 시작하여 수·목·금 맹휴는 대성공이다. 교정엔 학생회 간부 몇 사람과 정보과 형사들뿐. 관할인 동대문 경찰서를 비롯하여 경무대 경찰서, 종로 경찰서 등등 많은 정보과 형사들이 모여들었다. 그런 가운데도 구면 형사가 생겼다. 채 형사는 얼마간 호인형으로 나중에는 우리에게 털어놓고 이야기한다. 당신들 선배 잘 둔 줄 알아라. 판사, 검사는 물론 7, 8할의 법조인이 모두 서울법대 출신이니 당신들을 건드리기가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다른 대학 같았으면 주모자들을 감쪽같이 테러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때는 ‘용공’ 운운하며 조작할 정도로 간악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 중간에 법대 교수회의에도 한 번 참석하였다. 신태환 학장 때다. 케인스 경제학을 가르치던 신 학장은 나중에 서울대 총장, 통일원 장관 등을 지냈다. 학장의 위치이니 수비역이다. 공격수는 법철학의 황산덕, 헌법의 한태연, 정치학의 정인흥 교수였던 것 같다. 그들의 세련된 논쟁에 끼어들다 보니 순진한 학생의 몸으로 논리 전개도 거칠게밖에 안 되고 감정이 복받쳐 창피하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순진했던 시절이다.

학내 테러도 있었다. 2학년 대의원 박양식군이 얻어맞아 얼굴에 피를 벌겋게 하고 나에게 와서 하소연이다. 때린 자는 조아무개군으로 지금도 그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세월이 지나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이강석군 모교 출신 중심으로 스트라이크 파괴공작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혹은 현찰로, 혹은 외국여행을 미끼로…. 그러고 보니 짐작 가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서울대학 본부와의 교섭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금요일 오전에 총장실에서 총장과 학생 대표와의 회의가 열렸다. 총장은 의대 교수인 윤일선 박사로 4·19 후 대통령이 되는 윤보선씨의 집안이다. 총장과의 협상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고 갔으나 요는 이번 이강석군 편입학은 ‘스페셜 케이스’로 인정해 주면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일이 다시는 없겠다는 것. 전혀 설득력이 없다. 학생들은 학생총회를 공식으로 소집하는 일을 요구해 총장의 승인을 받았다. 공식으로 소집되는 학생총회에 이 ‘스페셜 케이스’론을 상정하겠다는 타협인 셈이다. 즉각 토요일 몇몇 중요 조간신문에 학생총회가 소집된다는 공고가 나갔다.

서울 문리대에 있던 대강당을 문리대 대강당이라고도 하고 서울대 대강당이라고도 했다. 총장 공인 아래 거기서 학생총회를 소집할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토요일 오전에 열린 총회에는 대강당의 아래위층이 꽉 찼다. 법대생이 약 1000명선. 나올 수 있는 학생은 다 참석한 것 같다. 그 총회를 사회하는 학생위원장 대리, 즉 학생총회 의장 ─ 젊음의 기(氣)가 한껏 고양된 시간이다.

총장과 협의한 안을 상정하니 학생들은 처음부터 반발했다. 반대토론 일색이다. 그럴 줄로 짐작했다. 애초부터 ‘스페셜 케이스’ 운운은 성립이 안 되는 이야기다. 이강석군의 편입학을 취소할 때까지 동맹휴학을 계속하자는 것이다. 모두 웅변이었지만 특히 김덕군(나중에 안기부장·통일부총리)과 최광률군(나중에 헌법재판관) 등이 대단했다.

그럴 때 사태를 총괄하는 학생총회 의장으로 책임을 크게 느끼게 된다. 어렵게 얻은 공인 학생총회의 기회이다. 여기서 충분히 의견을 말하는 것은 좋은데 만약에 결론을 못 내리고 스트라이크 계속으로 막을 내린다면…. 복잡하고 어려운 사태로 발전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무제한 발언을 주어 학생들의 분노를 모두 발산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전 10시쯤에 시작된 총회는 오후에 밖이 약간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까지 진행되었으니 7, 8시간쯤의 회의가 아니었을까.

원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발언 기회를 주고 나니 좀 김이 빠지고 차분해지는 듯했다. 그때 총장의 제안을 받아들이느냐, 학생회 임원의 일괄사표를 받느냐는 양자 중 택일의 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박수가결의 편법으로 통과시켰다. 문제가 있는 의사진행이다. 그러나 모두 할 말은 했고, 지쳐도 있으며, 다른 대안도 마땅치 않으니 그렁저렁 용인하는 듯했다. 물론 그 후 최동규군(나중에 동력자원부 장관)은 의사진행의 잘못을 꼬집어 지적했다.

이강석군은 그 후 한두번 학교에 모습을 나타냈다. 권총으로 뒤가 불룩한 경호원을 거느리고…. 그리고 법대를 단념하고 제3사관학교로 옮겼다. 법대 맹휴는 잠깐 실패한 듯 크게 승리한 것이다. 그 후의 비극은 참 안되었다.

사태가 일단락된 뒤 황산덕, 한태연, 정인흥 교수는 이강혁군과 나를 불러 1차 화식집, 2차 명동의 유명했던 바 갈릴레오에서 한턱을 냈다. 처음 가본 바였다.

서울법대 맹휴는 4·19에 앞서 이승만 정권에 황혼이 왔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나는 그 일로 하여 법대생이 몰두했던 고등고시를 단념하고 신변보호를 할 겸 언론의 길을 택했다.

국내 신문에는 전제정치하에 1단 정도로 소홀하게 다루어진 사건이었지만, 프랑스의 <르몽드>가 잘 다루었다고 당시의 유학생 정하룡 박사는 귀띔을 한다.

남재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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