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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멸종 위기의 방학 / 공현

등록 2014-08-10 19:24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한 고등학교에 인권교육을 가게 됐다. 한데 교육한 날이 보통은 한창 방학 중일 8월 첫째 주였다. 동네의 식당들도 모두 문을 닫은 휴가철에 학교에 가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방학 특강 같은 거라도 여나 보지,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학생분들에게 물어보니 바로 그날이 개학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방학을 시작한 것은 7월22일인가 23일이었다고 했다. 여름방학이 대략 보름밖에 안 됐다.

이 학교만 유별난 것이 아니다. 지난해 8월에 청소년 교육단체들이 “내 이름은 방학, 짧죠!”라는 이름의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도 방학이 2주밖에 안 되는 사례들이 소개됐다. 방학 좀 해준다는 학교들도 대개 3주 남짓인 형편이다. 교육부의 2013년 보고서를 보면, 한국 학교의 방학일수는 약 78일. 이것도 초·중·고등학교 1개씩 샘플로 조사한 것이니 이보다 더 적은 곳도 부지기수일 터이다. 교육당국은 주5일제 때문이라고 변명하지만, 마찬가지로 주5일제인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별 설득력이 없다. 같은 보고서에도 프랑스 방학일수가 120일, 미국이 102일, 영국이 91일이다. 공휴일 수 등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차이가 난다.

애초에 한국의 수업일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0일 이상 긴 195~197일에 이른다. 수업은 많이 하고 덜 쉬고 있는 것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법정 수업일수를 “190일 이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190일도 그리 적은 편은 아닌데, 법에 하한선은 있으면서 상한선이 없다 보니 대부분의 중·고등학교는 190일보다 수업을 더 많이 한다. 방학 중 운영되는 보충수업 및 방과후 학교까지 헤아리면 얼마나 늘어날지 두렵다. 무늬만 선택이고 강제적인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말이다. 여름방학이 2주라거나 방학에도 보충수업을 시키는 사례들을 접하다 보면, 한국의 방학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도한 사교육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흔히들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공교육, 학교 교육의 과도함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사교육이 문제고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함정이 있다. 사교육만큼 ‘질 높은 장시간 입시교육’을 학교가 제공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일례로 사교육 없는 학교를 표방한 어느 중학교는 방과후 학교를 밤 9시까지 시키는 것을 자랑으로 내세웠던 적이 있다. 학원비도 줄어들 테고 장점도 있겠지만, 과연 이것이 교육적인 것인지 또 청소년의 자유와 시간을 보장하는 바람직한 길인지는 의심스럽다. 사교육인지 공교육인지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청소년들이 정작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간과할 위험이 있다.

방학은 학생들이 여가와 휴식을 가지고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다. 온전한 방학이 줄어들고 사라져가는 모습은 한국 교육과 청소년의 암울한 현실을 드러내는 표지다. 한국의 많은 노동자들이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조차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을 자랑하고 있는 현실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줄어들기만 하는 방학과 휴가 그리고 쉼과 여가시간을 지키고 늘리기 위한 사회적 힘과 운동이 절실하다. 적어도 1년에 3개월 이상은 방학을 하자는 것이 무리한 주장은 아닐 것이다. 쉬고 노는 것의 가치를 인정받고 우리의 시간을, 시간에 대한 권리를 찾아와야 한다. 우리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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