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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자미꽃 / 김지석

등록 2014-08-24 18:27

‘열흘 붉은 꽃이 없다’(화무십일홍)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꽃도 여럿 있다. 긴 여름을 넘어 가을까지 우리 눈을 즐겁게 하는 배롱나무와 능소화 꽃이 대표적이다. 둘 다 은근히 화려하다.

두 나무의 위상은 자미(紫微)라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능소화는 자미꽃, 배롱나무는 자미수로 불렸다. 자미궁은 천제(天帝)가 머무는 곳으로, 북두칠성이 그 주위에 배치돼 있다. 세계의 중심이 자미인 것이다. 세계제국이었던 당나라는 핵심 권력기관인 중서성·한림원을 자미성이라고 했으며, 이곳에 배롱나무를 많이 심었다. 가지마다 흐드러지게 피는 배롱나무꽃은 끝없이 배출되는 인재를 뜻하기도 한다.

배롱나무(백일홍나무)의 붉은 꽃은 일편단심을 상징한다. 사육신 가운데 한 명인 성삼문은 이 꽃을 좋아해 ‘백일홍’이라는 시를 남겼다. 그러나 배롱나무의 꽃이 진 뒤에는 매끄럽고 앙상한 줄기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곧 모든 것을 미련없이 내준 무소유 상태가 된다. 절에서 배롱나무를 즐겨 심는 까닭이다. 배롱나무는 줄기의 한 부분을 간질이면 작은 가지들이 웃음을 참는 듯 흔들린다는 뜻에서 간지럼나무로도 불린다.

능소화 꽃은 금등화라고도 한다. 실제로 능소화와 등나무는 줄기 모양이 비슷하지만 보라색인 등나무 꽃보다 주홍빛의 능소화 꽃이 더 세련돼 보인다. 능소화는 ‘하늘을 업신여길 정도로 높이 자라는 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덩굴식물이어서 혼자 자라지는 못한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에 이런 대목이 있다.

‘능소화여/ 그 잎이 푸르고 푸르도다/ 내 이럴 줄 알았다면/ 태어나지 않은 것이 나았으리’

쇠퇴기 주나라에서 큰 기근이 닥친 시기가 이 시의 배경이다. 능소화가 다른 나무나 담장 등에 붙어 자신의 모습을 뽐낼 수는 있으나 나라가 언젠가 무너지듯이 무한정 갈 수는 없다는 탄식이다. ‘자미’에는 이룰 수 없는 영원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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