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된 학담 스님의 <아함경>(12권)은 원고지 4만5000장에 육박하는 분량만으로도 한국 불교 번역·연구 역사에 획을 긋는 성취라 할 만하다. 1970년 법대 1학년 재학 중 출가한 학담 스님은 1980년 겨울안거 때 용맹정진 하던 중 “‘아함’에서 ‘화엄’까지 붓다의 교설이 연기중도의 진실을 밝히는 한맛의 법임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30여년 정진을 거듭해 과업을 이뤄냈다. 산스크리트어 아가마(agama)를 음차한 아함은 ‘전해져 오는 성스러운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붓다가 제자들을 앞에 두고 한 말씀을 원초적인 형태로 간직하고 있는 초기 경전이 아함이다. 이 경전을 뿌리로 삼아 중관·유식·화엄 같은 후대 대승불교의 가지가 뻗어 나왔다. ‘학담 아함경’은 이 아함을 대승불교의 교리를 통해 재해석하고, 다시 그렇게 재해석된 아함을 바탕으로 삼아 불교 전체를 하나로 꿴다. 일이관지의 회통 정신에 투철한 해석 작업이다.
학담 스님이 아함경을 연구한 30년은 불같은 1980년대를 포함하고 있다. 이 시기에 학담은 법복을 입은 승려로서 한국 사회 변혁의 이론과 실천을 고민했다. 불교의 교설을 헤겔 변증법 언어로 담금질하기도 했다. ‘학담 아함경’은 바로 그 변혁시대의 화염으로 단련한 불교 언어를 온전히 내장하고 있다. “인간 주체는 늘 타자를 이름 부름으로써만 자기를 자기로서 세울 수 있다.” 깨달음은 삶의 현장 바깥에 있지 않다. “고통과 미망 속에서 헤매는 중생에 대한 자비의 마음과 실천이 없다면 선과 삼매는 닫힌 영혼주의자의 헛된 관념 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윤회란 다른 것이 아니라 “원인이 결과를 내고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어 끝없이 되풀이되는 소외와 고통의 악순환”이다. 그러므로 해탈은 윤회의 고리를 끊는 일, 곧 미혹에서 벗어나 삶의 실상을 봄으로써 현실의 질곡을 깨고 나가는 ‘앎의 해방, 삶의 해방’이다. ‘학담 아함경’은 그 해방 정신의 장엄한 개화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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