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 기록노동자
서울로 가는 기차에서였다. 건너편에 부녀지간으로 보이는 남자와 아이가 앉았다. 여자아이는 정신지체장애가 있는 모양이었다. 눈길이 가 보게 됐다. 아이가 남자에게 초콜릿 하나를 건네자, 남자는 과자를 내밀었다.
“○○이가 초콜릿을 줘서 아빠가 너무 고마워서 주는 거야.” 그 말투가 어찌나 따뜻하던지. 아버지란 사람의 손길 하나하나가 배려 있고 다정했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내게도 장애가 있는 아이가 태어난다면 저런 배려로 키워야겠다. 생각을 하다 말고 놀랐다.
처음이었다, 장애아를 내 삶과 연관 지어 생각한 일이. 장애아를 낳고 키우는 것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몸을 가눌 수 없는 아이를 책임져야 하다니. 그 희생과 눈물을 어찌 감당하라는 말인가. 내 머릿속 장애아 가정의 모습은 울음으로 가득했다. 부모들은 헌신적인 모성과 부성으로 견뎠다. 나는 그런 모성과 거리가 멀다. 그러니 나에게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는 출산의 문제를 두고, 나는 단호히 거부하다 못해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조차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남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 눈물겨운 장애아 가정은 어디서 보았더라. 비틀린 몸을 가누지 못해 바동거리는 아이, 자신의 탓이라며 가슴을 움켜쥐는 부모. 어디서 보았더라. 수많은 텔레비전 방송, 그밖에 특집 기사들과 몇몇의 광고들.
일상의 모습을 가리고 모성과 눈물을 극대화시킨 방송들이 내게 준 것은 공포였다. 저렇게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다니. 공포의 대상을 밀어내기 바빴던 내가 기차에서 부녀를 본 것이다. 남자는 아이에게 고마움과 보답에 관해 가르치려는 아빠였다. 그저 부모일 뿐인 그를 보고서야, ‘나도 저렇게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나가듯 했다. 그건 아주 작은 공감이었다.
일부, 아니 어쩌면 다수 대중매체들이 그렇다. 특정한 사안을 다루는 데 눈물, 비명, 고통을 앞세운다. 소수자의 고통을 전하고 싶은 저널리즘의 욕구일 수도, 자극에 끌리는 시청률의 욕구일 수도 있겠다. 이유야 알겠으나, 결국 누군가의 삶이 가진 특정한 지점만을 보여주는 방식이 매체를 채운다.
장애인은 휠체어에 앉아 울고, 밀양과 청도 할머니들은 악을 쓰며 ‘날 죽여라’ 한다. 노숙자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소주나 마시고, 성매매 여성은 얼굴을 가리기 급급하다. 투쟁하는 노동자는 빨간 조끼를 입고 성을 내며, 비정규직 노동자는 억울한 이야기만 한다.
이런 반복학습은 그들을 고통만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나 또는 내 이웃과 어떤 공통분모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안쓰럽고 불쌍하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존재. 세상에 누가 악만 쓰고 울기만 하는 이들을 오래 바라볼 수 있을까. 사람들은 보지 않는다. 내 삶이 지칠 때는 힐끔거리기조차 버겁다. 부담스럽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짐 덩어리가 된다.
‘일반인’, ‘시민’이라 스스로를 지칭하는 우리는 그들 같은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이어진다. 해고자, 최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 성적 소수자, 노숙자, 장애인 등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안 되기에, 얇은 줄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때로 줄에서 떨어지지 말자는 경각을 위해 ‘짐’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불편해한다. 두려워한다. 그러나 숱한 무언가가 되어서는 안 되는 삶을 사는 것, 그조차 버겁고 두려운 일이다.
희정 기록노동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