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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이슬람국가와 스코틀랜드

등록 2014-09-24 18:29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스코틀랜드와 이슬람국가(IS).

전혀 다른 실체인 듯하지만 공통점이 여럿 있다. 우선 둘 다 독립국가가 되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스코틀랜드 주민투표는 18일 부결됐고, 6월 출범한 이슬람국가는 미국이 제거 대상으로 지목해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양쪽의 땅 넓이와 인구도 대략 비슷하다. 더 중요한 것은 둘 다 국민국가(nation-state)의 심각한 균열을 상징한다는 점이다.

국민국가는 서구가 주도한 근대 문명의 핵심 주체로 이후 지구촌의 보편적 국가 형태가 됐다. 국민국가는 밖으로 배타적인 주권을 갖고 안으로는 경제·사회·문화 등에서 강한 통합성을 유지한다. 영국은 성공한 국민국가의 한 모델이다.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은 이후 두 세기에 걸친 ‘대영제국의 영광’으로 이어졌다.

영국과 같은 다민족 국민국가가 성립하려면 적어도 세 가지가 맞아야 한다. 먼저 안보 역량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또 경제 면에서 서로 이익이 돼야 하며, 다른 정체성을 좀 더 높은 수준에서 통합할 수 있는 사회·문화·이데올로기적 요소를 갖춰야 한다. 통합 직전 스코틀랜드는 거의 파산 상태였다. 국내 가용자금의 절반 가까이가 들어간 다리엔 프로젝트(파나마에 식민지를 개척하는 계획)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라는 ‘배후의 적’을 잠재우고 프랑스·스페인 등 대륙의 강국과 맞설 필요가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 추구는 20세기 내내 이어진 다른 독립 움직임과 성격을 달리한다. 1·2차 대전과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탄생한 독립국들은 18~19세기 서구에서 생겨난 국민국가의 연장선에 있다. 반면 스코틀랜드의 독립은 근현대 국민국가라는 역사적인 형태 자체의 유효성을 부정한다.

서구 나라들의 침탈을 거친 제3세계에서는 국민국가 건설이 쉽지 않았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이 특히 그랬다. 외세가 마음대로 그은 국경선과 지속적인 간섭, 식민지 시절부터 고착된 왜곡된 경제구조 등은 독립과 국가 건설을 아주 어렵게 했다. 그럼에도 중동 나라들은 나름대로 자립 능력과 국가적 정체성을 키워나갔다. 사담 후세인이 통치한 이라크 역시 독재국가였을망정 국민국가의 모습을 가졌다.

이슬람국가는 이런 노력조차 좌절된 폐허에서 탄생한 괴물이다.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뒤 9년 가까이 병력을 주둔시킨 미국이 만들어낸 셈이다. 이슬람국가는 국민국가와 차이가 있는 신정국가를 내세운다.

스코틀랜드의 독립 추구는 잉글랜드와 통합한 배경이 됐던 상황들이 모두 달라졌음을 뜻한다. 우선 생산과 시장이 지구화한데다 유럽연합이라는 초국가적 통합체가 존재한다. 꼭 잉글랜드에 기대지 않아도 경제를 꾸려갈 수 있다. 안보 측면에서도 자신을 위협하는 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영제국이라는 정체성도 이젠 없다. 오히려 잉글랜드라는 신자유주의 정치체는 스코틀랜드가 지향하는 북유럽식 복지국가와 충돌한다. 이런 요인들이 존속되는 한 앞으로도 스코틀랜드인들의 독립 의지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슬람국가의 앞날은 어둡다. 지금처럼 10여곳의 유전을 계속 장악할 경우 경제는 꾸려갈 수 있다. 종교를 기반으로 한 정체성도 통합의 힘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안보다. 미국이 주도하는 적대세력과 긴 전쟁을 해야 한다. 외부 위협은 국가 성립의 조건이 되기도 하지만 이슬람국가가 가진 모든 자원을 고갈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국가가 사라지더라도 중동에서는 국민국가와는 다른 형태의 나라가 계속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

국민국가 이후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어떤 나라든 소수 세력을 억압한다면 분열의 길을 걷게 될 것이고, 지구촌에 위협이 된다면 소멸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거꾸로 평화를 키우고 경제적으로 자립 가능하며 사회·문화적 정체성을 심화할 수 있는 세력은 새로운 국가를 꿈꿀 수 있다. 이것은 기존 국민국가를 넘어 분열된 지역을 통합하려는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평화와 경제 역량, 민주주의에 기초한 정체성은 남북통일의 필수요건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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