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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감각의 독재 / 조원광

등록 2014-10-05 18:34

조원광 수유너머N 연구원
조원광 수유너머N 연구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함께 자취나 하숙을 하던 때를 회상하면, 청소 때문에 다퉜던 기억이 빠지지 않는다. 깨끗하게 살기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무엇이 깨끗한 상태이냐를 합의하기가 참 힘들었다. 상대적으로 깔끔한 녀석이 있으면 무신경한 녀석도 있기 마련인 탓이다. 지금에야 웃으며 떠올리지만, 당시에는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언제 치우냐를 두고 자못 비장하게 ‘투쟁’하곤 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다보면, 이런 식으로 감각의 차이를 경험한다. 때론 이것이 불편함과 다툼의 이유가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삶의 가능성을 확대해준 것 같다. 익숙한 공간만을 고집하던 내가 낯선 곳으로 자전거를 타고 떠나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은, 내 눈에 ‘더럽게 자유분방했던’ 룸메이트 때문이었고, 일을 벌이기만 하고 정리하지 않던 그가 정돈하고 마무리하는 습관을 얻은 것은, 그의 눈에 ‘쪼잔하고 답답했던’ 내 덕이 없지 않았다 믿는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유용한 힘을 발휘하는 감각이 다르기에, 다양한 감각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상황 대응 능력이 크다. ‘그릇이 크다’는 말은 자신과 다른 감각이나 스타일을 포용하는 능력을 뜻하며, 민주주의가 전체주의에 비해 더 큰 능력을 갖는 것도 그 큰 그릇 때문이다.

거꾸로 자신의 감각만이 옳고 아름답다 믿으며, 이 좋은 것을 남도 느끼게 해주겠다는 빗나간 애정을 실천하는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정부 전체가 꼰대가 되어가는 듯하다. “사회 어른 입장”에서 길거리에서 동영상 보는 것이 건전한 것인지 이야기해봐야 한다는 방통위원장이나, “비난과 욕설로 오염돼 가는 인터넷 문화”를 개탄하는 여당 원내대변인의 말은, 답답하고 편협해 보이지만 그래도 참을 수 있다. 조직이나 체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일에는 이런 고지식한 시각도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하지만 검찰이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전담 수사팀’을 만들어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나서고, 그래서 카카오톡 간부를 회의에 부르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를 넘어섰다.

이른바 ‘허위사실’이란 많은 경우 애매하다. 과거 대통령께서, 철도 경영 혁신이 아니라 철도 민영화라 말하거나 의료 자회사 설립 허용이 실질적 의료 민영화의 가능성을 연다고 평하는 것을 유언비어라고 하셨을 때, 심지어 자신을 두고 불통이라 칭하는 것도 유언비어라고 하셨을 때, 나는 허위가 관점에 따라 자의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양보해도 의견의 차이라 해야 할 말들이 자기 감각과 관점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유언비어로 들릴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유언비어’를 국가권력으로 근절하겠다? 이것이 공권력을 동원한 꼰대짓과 뭐가 그리 다를까? 물론 얼토당토않은 거짓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 없애겠다고 허위사실이니 분열이니 하는 애매한 기준으로 검찰을 동원하는 것은, 빈대 잡느라 집을 태운다는 속담에 딱 들어맞을 일이다.

계급과 습관, 직업과 성향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아울러야 할 민주국가의 리더야말로, 자기 감각을 고집하는 대신 거꾸로 계속 돌아보고 의심해봐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감각과 관점을 포용하여 사회의 능력으로 발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나라의 리더들이, 자기 감각과 관점에 어긋나는 것을 그저 배척하는 ‘감각의 독재자’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조원광 수유너머N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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