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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존재를 위한 소유 / 임자헌

등록 2014-10-26 18:45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얼마 전 영화 <루시>(Lucy)를 보았다. 주인공 루시는 어느 날 우연찮게 지하조직에 납치되어 그들의 새로운 암거래 약품인 강력한 합성물질을 운반하게 된다. 문제는 지하조직이 그 합성물질을 루시의 복부 안에 넣어 운반하게 했다는 것이다. 운반 도중 루시는 심하게 복부를 걷어차이는 일을 겪게 되고 그 충격으로 배 안에서 터진 합성물질은 그의 몸과 반응을 일으켜 뇌 사용량을 엄청난 속도로 증가시키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시작이다.

액션영화나 공상과학영화인 줄 알았는데 둘 다 아니었다. 철학적인 영화였다. 인간은 보통 자기 뇌의 10% 정도를 사용하는데 뇌 사용량 100%에 도달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소재로 ‘소유냐 존재냐’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뇌 사용량 100%에 도달해가는 인간 루시는,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시간이 없으면 존재가 불가능하다고. 루시를 돕는 뇌 과학자 노먼 박사는 원시 삶의 목적은 시간을 얻는 것이고 세포의 목적은 존재하는 것인데, 정작 존재하고 있는 인간은 존재보다 소유에 관심이 많다고 말한다. 세관 통과를 무사히 하려고 사람(루시와 몇 명의 운반책들)의 배를 열어 그 속에 강력한 합성물질을 넣어 운반하게 한, 돈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잔인한 지하조직의 모습은 존재는 간데없이 오로지 소유만 생각하는 인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 누구도 자신의 탄생을 계획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시간 속에 던져졌고 그래서 시간을 걸어가게 되었고 또 어느 순간 이 시간을 벗어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존재만으로 삶은 충분히 의미 있다. 그러나 존재가 너무 익숙해서 우리는 종종 존재의 의미를 놓치고 소유를 향해 달려간다. 목표를 설정하고 달려가서 이루고 그것을 ‘가져야’ 한다. 그때 비로소 의미 있는 삶이 된다. 가진 자는 박수를 받고 가지지 못한 자는 존재 가치를 의심받는다.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인 양주(楊朱)는 ‘인생은 자고로 마음껏 즐겨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사람은 길어야 100년을 사는데, 갓난아기 때, 늙어 힘없는 때, 잠자는 시간, 일하면서 혹은 멍하게 보내는 시간, 병들어 아픈 시간, 고민으로 괴로운 시간 등등 이럭저럭 다 떼고 나면 온전히 즐겁게 만끽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고, 게다가 그 얼마 안 되는 남은 시간마저 형벌과 상, 명예와 법 같은 사회적 제약들에 저당 잡혀 버리기 일쑤이지만 삶이란 잠시 와 있는 것이고 죽음이란 잠시 떠나는 것이니 자연스럽게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양주의 말을 들으며 잠시 돌아본 우리의 시간은 참으로 각박했다. 무한경쟁과 끝없는 성취라는 채찍질에 익숙해져버린 모습이었다. 학교, 직장, 집, 텔레비전, 그 어디서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더 힘껏 노를 저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한순간 저 아래로 추락해버릴 것이라고 겁준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불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쉴 새 없이 불안을 조장해서 소유에 집착하게 만든다. 하지만 소유가 불안을 해결할 수 있을까? 외려 소유에 몰두한 사회라 지금 우리 사회의 곳곳이 고통을 호소하는 건 아닐까? 존재로 시선을 돌리면 소유는 우리를 괴롭히는 채찍이 아니라 삶이라는 잔치에서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잔칫상이 되어 줄 것이다. 순서가 중요한 것 같다. 앞에 있어야 할 것이 앞에 있을 때 삶은 조금은 더 환해질 것이다.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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