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초기 치열한 해양 쟁탈전을 벌인 유럽 나라들은 세를 키우려고 민간 배의 무장까지 허가했다. 해적선을 공식화한 셈이다. 이를 사략선(私掠船)이라고 한다. 이들은 노략질할 대상을 찾으려고 바다 이곳저곳을 갈지자 모양으로 돌아다녔다. 이것이 십자가(cross)를 뜻하는 네덜란드어 크뢰이선(kruisen)으로 표현됐고, 결국 오늘날의 크루즈(cruise)가 됐다고 한다.
크루즈는 배를 타고 여러 곳을 다니는 것을 말한다. 크루즈선은 오래 머물면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리조트 시설을 갖춘 점에서 보통의 여객선과 구분된다. 크루즈선은 크고 화려하다. 10만~20만톤의 배에 수천개의 객실을 갖추고 많게는 만명이 넘는 사람을 태운다.
크루즈 산업은 19세기 초·중반 유럽에서 시작돼 유럽과 미주를 중심으로 확대돼왔다. 한때 대형 항공기에 밀려 주춤하다가 1990년대 이후 다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지난해 340여척의 크루즈선이 2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싣고 36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의 특징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시장의 급성장이다. 지난해 150만명에 이어 올해는 200만명 이상을 기록할 전망이다. 올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100만명 이상의 크루즈 관광객도 대부분 중국인이다. 중국은 미국과 유럽이 주도해온 지구촌 크루즈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세계 조선 1·2위를 다투지만 크루즈 산업에선 크게 뒤처져 있다.
동북아 시장의 성장과 관련해 ‘동해 크루즈’가 주목받고 있다. 동해는 동북아 핵심 나라들과 모두 연결되는 유일한 바다다. 거점으로 강원도 동해안 지역이 유력한 동해 크루즈의 활성화는 동북아 평화구조 정착에도 기여할 것이다. 시베리아 석탄을 북한 나진항을 통해 우리나라로 실어나르는 ‘동해 수송’이 시작됐다. 2차대전 종전 70돌인 내년에 남북한과 중국·일본·러시아가 모두 참여하는 ‘동해 크루즈’의 닻을 올리면 어떨까.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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