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광 수유너머N 회원
운 좋게 얻게 된, 하지만 언제 그만둬야 할지 알 수 없는 시간강의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버스 라디오에서, 경제단체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되는 분이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성 노조의 보호를 받는 정규직 때문에 기업들이 청년들의 신규 채용을 꺼리고 계약 해지가 가능한 비정규직만 채용하고 있으니, 정규직 보호 장치를 없애면 청년 고용 문제와 비정규직 확대가 완화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노동자 보호 장치를 없애야 노동자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희한한 논리를 이해하기 힘든 것은 둘째 치더라도, 어떻게든 취직은 시켜줄 테니 항구적 고용 불안을 감수하라는 ‘청년 실업 대책’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전체 노동자 중 7~8% 정도로 집계되는, 노조를 가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근속 연수도 길고 혜택도 많이 누린다는 점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보호를 없애는 것이 대체 어떻게 비정규직 축소와 청년 실업 완화로 이어진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노동자와 사업자는 기본적으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집단이다. 부담이 적어지면 사업자가 그 여력으로 더 약한 노동자를 배려하고 채용을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은,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이다. 냉정하고 합리적인 사업가라면, 오히려 해고 요건 완화라는 무기를 가지고 현재 채용된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를 올려서 신규 채용을 최소화할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기적적으로,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가 이른바 ‘부패한 귀족 노조’만 골라서 타격하고, 사용자들의 사회적 책임 의식이 갑자기 고양되어 청년들의 신규 채용 확대가 이루어진다 해도, 그것이 정말 좋은 일인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직업 자체가 아니다. 다들 직업은 많다. 투잡, 스리잡을 뛰어야 생활이 유지되는 판이다. 젊은 세대가 원하는 것은 양질의 직업을 구해 불안에 떨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해고 요건을 완화해 직장 일반을 열악한 형태로 하향평준화해 취직을 시켜주겠다? 직장이 없어 불안하니 불안한 직장을 주겠다는 조삼모사 같은 발상이 아닌가.
그럴듯한 말이 넘쳐난다. 해고를 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노동자가 다른 기업에 갈 수 있는 ‘이동성’을 높이는 것이라 하고, 불안에 떨게 하는 게 아니라 ‘유연 안정성’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 한다. 독일도 고용 유연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한다. 그런데 정말로 이동이라 하면 해고가 덜 괴로워진다고, 유연한 안정이라 말하면 불안을 떨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기업 내 복지가 복지의 대부분인 한국에서의 해고와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진 독일에서의 해고가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진짜 믿는 것인가? 아니면 이런 말장난으로, 구성원 모두가 합의를 통해 공평히 나눠야 할 사회적 부담을, 사내유보금이 500조가 넘는다는 재벌 대신 노동자와 젊은 세대에게 은근슬쩍 떠넘기려는 것인가?
아프니까 청춘이라더니, 그 말이 생각보다 진실에 가까운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힘이 없으니 대학에서는 각종 성희롱을 당하고 직장에서는 온갖 설움을 감내해야 한다. 그 힘든 삶을 토로하니 가해자 교수는 조용히 사라지고, 앞으로 사용자들에게 더 큰 힘을 실어주겠다 하고, 불안정한 직업을 확대 공급하겠다 말한다. 아프지 않을 때가 없고, 힘이 없음을 자각하지 않을 새가 없고, 그래서 청춘임을 잊을 수가 없다. 씁쓸하다.
조원광 수유너머N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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