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시인 김춘수(1922~2004)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했다. 인식되지 못하여 의미 없던 존재는 호명됨으로써 인식되고 또한 의미를 얻는다. 이름을 통해 의미의 무대에 오른다고 할 것이다. 사물, 이름, 의미의 관계가 이와 다른 경우도 있나 보다. 의미로 오래 탐색되던 광물이 뒤늦게 정식 학명을 얻어 신종 광물로 등재됐다.
새 광물의 이름은 ‘브리지머나이트’(bridgmanite). 이론과 실험을 통해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의 38%를 차지할 것으로 여겨지는, 지구에서 가장 흔한 광물이다. 하지만 자연에서 생성된 광물의 실제 표본이 제시될 때에만 신종으로 인정하는 국제광물학협회(IMA)의 규정에 따라, 수십년 동안 이름 없이 불려오다가 최근에야 화학식과 구조를 만족하는 이 광물이 발견됐다. 미국 연구자들은 1879년 오스트레일리아 땅에 떨어진 유성우 운석의 작디작은 조각에서 이 광물을 찾아내어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보고했다.
이 마그네슘-철-규산염 광물은 지구 땅속 660~2900㎞ 맨틀의 고온과 고압 환경에서나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고온·고압 장비를 갖춘 실험실에서 인공으로 합성해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광물학자들은 정식 이름 없이 불리던 이 광물의 표본을 엄청난 고온·고압을 거치며 지구에 떨어진 운석에서 오랫동안 찾아왔다.
지구를 이루는 가장 흔한 광물이 이제야 학명을 얻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도 인상적이지만, 발견자들이 고압 물리학의 개척자로서 실험장비와 측정에 열정을 바친 실험과학자 퍼시 브리지먼(1882~1961)을 광물 이름으로 기념한 일이나, 지구 깊숙한 곳을 대부분 차지하는 광물을 저 멀리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 조각을 통해서 엿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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