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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정치적’이면 안 된다? / 공현

등록 2014-12-07 18:55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올해 초 내가 활동하는 청소년단체의 지역모임이 경기도의 한 ‘청소년 문화의 집’으로부터 동아리방 이용을 거부당한 일이 있었다. 우리 단체가 교육부에 대해 항의하는 활동을 한 적이 있다면서, ‘정치적 사용’이라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정치적’ 성격을 판단하는 근거도 우습지만, 정치적 활동을 하는 단체라고 한들 작은 동아리방에 몇 명 모여 회의를 하는 것이 시설을 정치적으로 사용한다고 할 만한 일인지도 의문스러웠다. 애초에 거부 사유로 든 ‘정치적’이라는 말 자체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얼마 전에도, 서울시립청소년미디어센터가 동성애자인권연대 청소년인권팀의 행사에 대해 대관 취소 통보를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성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내용의 행사였다. 담당자는 통보를 하면서 “청소년에게 동성애가 뭐고 섹스가 뭐냐. 정치적 목적의 행사에는 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동성애 혐오적 종교단체 등이 “청소년들을 동성애에 끌어들이려는 행사에 반대하고, 공공시설에서 동성애 옹호 행사가 열려선 안 된다”면서 민원을 제기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소식이 따라왔다. 동성애가 ‘비정상적’인 것이며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물들 수 있다’는, 이중의 편견과 차별적 의식이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 청소년 문화의 집과 서울시립청소년미디어센터가 모두 ‘정치적’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언급을 했다는 것이다. 다른 공공시설에서도 흔히 정치적인 행사에는 대관할 수 없다는 안내를 볼 수 있다. ‘정치적’이란 말은 언제부턴가 별다른 추가 설명 없이도 공공시설 이용을 거부할 만한 사유가 되어버렸다. 정치적인 것이 범죄 취급을 받는 다른 예로, 여러 초중고등학교들이 아예 학생의 정치활동을 징계 대상으로 규정하는 학칙을 두고 있는 경우도 있다.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정치 혐오’에 더해, 청소년들은 미성숙하므로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가 함께 작동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치적’이란 말의 의미는 모호하다.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정치적인 것이 되기도 하고, 갈등과 논쟁이 있는 이슈가 정치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넓게 보면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가치판단과 행동을 하는 것은 모두 정치적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이면 안 된다는 말은, 현안에 대해 의견을 표하거나 참여해선 안 된다는 뜻이 되어버린다. 딱 봐도 민주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소리다. 또한 정치적이면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정치활동에 더 비싸고 불안정한 상업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면, 시민들이 자유롭게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이 더 높아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시설 등이 ‘정치적’인 것을 거부하는 데는, 아마도 논란의 소지를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하지만 공공시설일수록 더 논쟁이 되고 있는 문제에 관해 논의의 장을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 입장이나 활동에 무관하게 이용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적 중립’ 아닐까? 제한 기준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직접적으로 폭력과 차별을 행하거나 선동하는 성격의 행사인지 여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적인 것은 결코 금기가 되거나, 차별·처벌·배제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청소년을 포함하여 모든 시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정치적이어야 마땅하다.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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