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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비국민’의 두려움 / 공현

등록 2015-01-04 18:47수정 2015-01-04 21:12

지난해 12월19일, 처음으로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었다.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결정 소식을 접하고서다. 내가 너무 덜 비관적이었던 것일까? 국제 기준이나 법적 논리만 따져보더라도, 설마 정당해산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 믿음이 배반당하니 실망감과 무력감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것보다도 내 마음을 가득 메워온 더 큰 감정은, 바로 두려움이었다. 나도 어찌 될지 모르겠구나. 국가가, 법률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통합진보당만이 아니라 나를 향해서도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국민 아닌 자들은, 이 나라를 떠나라.”

정당해산에 동원된 논리는 지극히 군사주의적인 전쟁의 언어들이었다. 전쟁시 적에게 동조할 수 있다는 의심이 들기에 해산시켜야 한다 했고, 이분법적 판단으로 북한의 주장과 비슷하니까 북한 편이라고 했다. 공안검사 출신 헌법재판관들은 “전술”을 간파할 능력이 없으면 함정에 빠지기 쉽다며, 해산에 반대하는 이들을 어리석게 속아 넘어간 사람인 듯이 폄하했다. 심지어 헌재는 법률상 근거도 없이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의 자격을 상실시키겠다는 불법적 주장을 적어놓으면서 “비상상황”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애초에 심판 대상을 이 사회의 일원이 아닌 적으로 규정하고 몰아내려는 말들이었다.

이런 말들이 나에게도 향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십중팔구 내가 병역거부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며칠 뒤, 박유호라는 병역거부자의 병역거부 선언 자리에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언론과 온라인을 살피니 역시나 많은 날 선 말들이 그에게 쏟아졌다. 내가 병역거부를 한 지 2년이 넘어가지만 다른 이의 병역거부 소식과 거기에 쏟아지는 비난들에 나는 지금도 슬픔과 먹먹함을 느끼고 만다. 그중에서도 “이 나라를 떠나라” 같은 말은 욕설보다도 더 마음을 찌른다. 나와 아예 공존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사상을 가지고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색깔론은, 이제는 ‘국적론’으로 변신한 것 같다. 사상이 아니라 국적, 조국을 묻는 것이다. “종북”이라는 단어는,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 네 나라 아니냐는 의심이자 비난이다. 나처럼 국민의례도 거부하고 애국심과도 거리를 두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처지다. ‘조국이 다른 (것처럼 보이는) 자’이든 ‘조국이 없는 자’이든, 하나의 조국만 갖기를 요구하는 입장에선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일 것이다. 나라를 위한 희생을 거부하거나 국민의 의무라 이름 붙여진 것에 충실치 않아도 자칫하면 ‘비국민’의 자리로 추방당한다. 그러면, 통합진보당이 그러하듯, 시민의 권리 자체를 박탈당하거나 위협받는다.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비국민’ 논리는 얼핏 보면 케케묵은 사상검열이나 이념대립을 벗어난 듯싶다. 하지만 거기에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애국심 등의 ‘대중적인’, 그래서 더 잘 의심받지 않는 이념이 들어와 있다. 사실은 누군가를 노골적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국민’ 논리는 색깔론만큼이나 폭력적일지도 모른다. 나는 물론 한국을 떠날 생각은 없다. 솔직히 그럴 용기도 없다. 그러니 국민/비국민을 나누는 선에 다른 이들과 함께 맞서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이 사회의 구성원임을 받아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특히 요즘은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많은 ‘비국민’들을 만들고 점점 더 그들에게 가혹해질 것 같은 예감에 두려워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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