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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북-미 관계, ‘타이틀 롤’보다 중요한 것

등록 2015-01-07 18:56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연말에 방송 3사의 연기대상 시상식 모습을 모두 봤다. 한 해를 대표하는 드라마로 <정도전> <왔다! 장보리> <별에서 온 그대>를 내세운 것은 자연스러웠다. 흥미롭게도 세 드라마 모두 타이틀 롤(제목과 같은 이름의 등장인물)을 맡은 배우는 최우수연기상에 그치고 다른 배우가 연기대상을 탔다. <정도전>에서는 정도전보다 이성계가, <왔다! 장보리>에서는 친딸인 장보리보다 양딸인 연민정이, <별에서 온 그대>에선 별에서 온 도민준보다 상대역인 천송이가 더 높게 평가받았다. ‘역량 있는 주연급 배우’에 비해 타이틀 롤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된 게 오히려 성공 요인이 된 셈이다.

미국과 쿠바가 50년 이상의 적대관계를 끝내고 국교를 정상화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란에 대해서도 “남은 2년의 임기 동안 (이란 수도) 테헤란에 미국 대사관이 열릴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절대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핵 문제만 잘 풀리면 수교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쿠바 드라마’의 타이틀 롤은 물론 두 나라가 맡고 있다. 하지만 두 나라한테 대상을 주기는 어렵다. 오바마 대통령은 “어떤 나라를 실패한 국가로 몰아붙이는 정책보다 개혁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는데, 이는 유럽 나라들이 1990년대부터 해온 말이다. 이번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큰 역할을 한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냉전 종식 이후 더 긴밀해진 중남미 나라들과 쿠바와의 관계도 미국에 상당한 부담이 됐다. 역량 있는 주연이 여럿 있었기에 수교 드라마가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 주요국 가운데 쿠바와 수교하지 않은 나라는 미국과 한국·이스라엘·싱가포르 등 몇 안 된다. 미국이 오히려 고립된 상태였다.

미국-이란 관계도 비슷하다. 주요국 가운데 이란과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는 미국·영국·이스라엘·이집트 등 소수에 그친다. 유럽 나라들은 미국과 이란의 관계 개선을 꾸준히 중재하고 있다. 이란과 핵 협상을 벌이는 주체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에다 독일을 더한 ‘P5+1’이다. 여기서도 역량 있는 주연들이 돋보인다.

미국-쿠바 관계와 미국-이란 관계는 전형적인 ‘서방정치’의 영역 안에 있다. 배경이 되는 국제 권력구조 등 이해관계의 틀은 수백년의 역사를 갖는다. 자신들끼리는 세력균형을 추구하는 공격적인 서방과 저항하는 제3세계라는 틀 속에서 제한적으로 공존을 추구하는 패턴이다. 현실주의적인 힘이 강해지고 패권국이 이를 받아들이면 관계 정상화로 가게 된다. 서방 나라들은 이런 패턴을 만들어내는 데 익숙하다.

북-미 관계는 차이가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이 북한 문제에 본격 개입한 것은 ‘겨우’ 1940년대부터다. 서방정치에 상응하는 틀로서 ‘동방정치’는 형성돼 있지 않다. 주요 행위자인 한국·중국·일본·러시아 사이의 관계도 고정돼 있지 않다. 그 속에서 한반도 분단은 상수가 돼왔다. 한-중, 한-러 수교가 이뤄지고 주된 경쟁 축이 미-러에서 미-중으로 바뀌었지만 군사분계선은 여전히 동북아의 큰 경계선 구실을 한다. 북-미 관계 재정립과 관련해 참고할 만한 딱 들어맞는 모델이 없다.

그래서 역량 있는 주연이 더 중요하다. 일차적으로 우리나라일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굳어진 현실을 바꾸려면 그만한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지만 다른 어느 나라도 그런 부담을 지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관련국 모두와 깊이 있게 소통할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우리밖에 없다. 특히 우리는 북한과 미국의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이 그 생생한 사례다. 곧 ‘북-미 드라마’는 우리가 중심을 잡고 노력해야 완성될 수 있다. 이는 서방정치와 다른 동방정치의 모델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북-미 수교는 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전제로 한다. 북한 인권 문제도 가닥이 잡혀야 한다. 우리는 이들 문제를 진전시킬 지렛대를 갖고 있다. 남북 관계를 주도할 수 있는 힘과 대미 외교력이 핵심이다. 출발은 남북 관계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루빨리 작은 이견을 뛰어넘어 큰 걸음을 내딛길 바란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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