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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스피노자와 표현의 자유 / 고명섭

등록 2015-01-22 18:42

고명섭 논설위원
고명섭 논설위원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1632~1677)의 <신학정치론>은 1670년 1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이 책은 출생 신고를 하지 못했다. 책 어디에도 지은이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지은이만 감춘 게 아니었다. 암스테르담 출판업자 얀 리우어르츠는 책을 펴낸 곳을 함부르크라고 써 넣었고, 펴낸이의 이름도 가명으로 바꾸었다. ‘표현의 자유’를 가장 먼저, 가장 단호하게 옹호한 이 책은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 채 세상에 나왔다. <신학정치론>은 ‘지옥에서 악마가 쓴 책’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네덜란드 공화국 고등법원은 인간의 영혼을 썩게 하는 “이 독극물”을 금서로 묶어 사회에서 추방했다. 스피노자는 이 파문당한 책에서 “생각하는 것을 가르치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하는 정부”야말로 가장 폭압적인 정부라고 선언하고, ‘사상과 견해를 공표할 자유’를 요구했다. 스피노자의 이 책으로부터 ‘표현의 자유’ 원칙이 처음으로 분명한 형태를 갖추어 등장했다. 스피노자를 뒤따라 영국에서 존 로크가 <관용에 관한 편지>(1689)를 부쳤고, 볼테르가 프랑스에서 <톨레랑스에 관한 논설>(1763)을 썼다. 마침내 1791년 건국의 아버지들이 미국 수정헌법 1조에 ‘표현의 자유’ 원칙을 새겨 넣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이 ‘표현의 자유’ 원칙이 겨냥하는 곳이다. 스피노자가 과녁으로 삼은 것은 바로 당대 네덜란드의 지배자들이었다. 그 시대에 네덜란드는 칼뱅파 교권주의자들이 교회와 정치를 모두 장악하고서 편협한 신앙관을 사회 전체에 강요하고 있었다. 이 지배집단은 무지한 대중을 거느리고서 깨어 있는 소수의 입을 틀어막았다. 스피노자의 벗 아드리안 쿠르바흐가 바로 이 지배적 종교관을 비판하는 책을 썼다는 이유로 감옥에서 목숨을 잃었다. <신학정치론>은 벗의 죽음에 대한 항의였다. 스피노자·로크·볼테르가 같은 목소리로 요구한 것은 소수파의 신념과 의견을 탄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프랑스와 유럽을 들끓게 한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을 스피노자의 눈으로 보면 어떨까. <샤를리 에브도>가 조롱한 무함마드(마호메트)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는 이슬람 세계는 서구 세계의 맞수가 아니다. 유럽과 미국의 제국주의와 석유 탐욕 때문에 찢기고 갈라져 만신창이가 된 국제정치의 패배자들이다. 그 폐허에서 과격 이슬람주의가 자라났다. <샤를리 에브도>가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이 자유의 본디 뜻에 비추어 보면 경박하고 과도하다. 알튀세르 용어로 말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모두 장악한 프랑스 주류 지배층이 언론매체를 이용해 이슬람 정신을 모욕한 것이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이다. 그것은 타자의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다.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에서 말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이 범죄로 취급될 때 인간은 가장 분노한다.”

스피노자가 ‘표현의 자유’로 말하려 한 것은 지배적 가치에 맞서 다른 견해를 표현할 자유였지, 강자의 자리에서 약자를 내려다보며 비아냥거릴 자유가 아니었다. 무함마드 모독을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그 자유는 ‘표현의 자유’ 원칙이 태어난 이유를 헤아리지 못하는 오만한 자유이며 자유의 남용이다. 이슬람 정신의 희화화는 스피노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옹호했던 자유, 인간을 해방시키고 우리의 상상력을 열어주는 그 자유와 거리가 멀다. 표현의 자유가 진정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경우를 가까이서 찾는다면, 종북몰이를 당한 신은미·황선씨의 통일콘서트일 것이다. 주류 지배층의 생각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단으로 몰아 탄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분개했던 그 완고한 교권세력이 하던 짓이다. ‘표현의 자유’의 적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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