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연 교수의 정치철학 대작 <감정과 공감의 해석학>은 인간의 공감능력을 인문·사회과학 전체를 떠받치는 핵심 근거로 제시하는 거대한 기획이다. 이성능력이 아니라 공감능력이야말로 모든 인간적 삶의 바탕이라는 것이 이 기획의 기본 신념이다. 공감이란 타인의 감정을 나의 감정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는 뇌의 거울뉴런과 그 감정을 똑같이 재생시키는 변연계를 통해 우리는 공감에 이르게 된다.
이 책의 흥미로운 통찰 가운데 하나는 공론장과 공감장의 대비에서 보인다. 위르겐 하버마스가 발전시킨 공론장이 공론(여론)을 형성하는 의사소통 공간을 가리킨다면, 황태연 교수의 공감장은 언어로 다 표현되기 어려운 인간 마음의 교감이 만들어내는 장을 뜻한다. 공론장의 핵심은 말의 교환이며, 공감장의 핵심은 이심전심이다. 언어라는 이성적 수단을 사용하는 공론장이 더 순도 높은 것이고, 감정의 공유로 형성되는 공감장은 더 낮은 차원일 것 같지만, 황태연 교수는 둘의 위상을 거꾸로 놓는다. 국가적 시야에서 보면 공감장은 ‘민심의 바다’이며, 공론장은 그 민심의 바다 위에서 일어나는 파도 같은 것이다. 드넓은 공감의 바다로서 민심은 결코 언어로 다 드러날 수 없다. 그러므로 진정 주목해야 할 것은 표면의 포말과도 같은 공론장이 아니라 그 아래 있는 거대한 공감장이다.
위정자와 국민 대중 사이에서도 공감은 작용한다. 황태연 교수는 이 작용을 <역경>의 <계사상전> 한 대목을 빌려와 설명한다. “군자가 방 안에 앉아서 자기의 말을 표출하는 것이 선하지 않으면 천리 밖에서 그 말을 거부하는데, 하물며 가까운 데서는 어떻겠는가?” 위정자와 백성들 사이 공감은 순식간에 천리를 오가듯 “광속으로” 이루어진다. 지금 청와대와 국민 사이의 관계를 여기서 엿볼 수 있다. 대통령은 불통의 밀실에 갇혀 있지만, 신기하게도 국민 대중은 대통령의 마음속까지 훤히 들여다본다. 공감이야말로 정치의 열쇳말이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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