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 ‘비티에이(BTA·Better than Average) 효과’라는 말이 있다. 여러 면에서 자신이 평균 이상이라고 판단하는 인지적 편향, 즉 착각을 의미한다. 드라마 <미생>을 본 후, 자신은 오 과장과 같은 상사인데 장그래 같은 부하가 없어 힘들다고 토로하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전형적인 비티에이 효과다. 자신의 인성과 리더십이 평균보다 훌쩍 위쪽이라 여기고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지가 오 과장인 줄 아는 놈들은 다 마 부장이다’라는 세간의 이죽거림은, 이런 편향이 대부분 진실과 심대한 거리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영화 <국제시장>을 두고 사람들 사이에 미묘한 인식 차이가 드러난 것도 이런 편향의 연장이 아닐까. 주인공 덕수는 독일과 베트남까지 오가며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 처음 만난 베트남 꼬마에게도 친절할 만큼 심성이 곱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너무나 아름답지만, 그래서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이런 어른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보통은 희생을 하면 다른 이가 고마워하길 바란다. 그래서 덕수처럼 왜 가게를 팔지 않는지 평생 말을 하지 않기보다, 한 오천 번쯤 자기 이야기를 떠들어대기 마련이다. 그래도 알아주지 않으면 참다못해 화를 내기도 한다. 현실의 사람들은 보통 이런 이중성을 갖고 있고, 이는 인식의 차이를 낳는다. 자기 긍정적 편향에 따라 부모 세대는 자신이 감당한 희생을 중심으로 과거를 떠올리지만, 자식 세대는 그 와중에 부모 세대가 표출한 스트레스의 피해자로서 자신을 연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 세대가 많은 희생을 감내한 것이 분명함에도 집집마다 마냥 아름다운 가족 드라마가 펼쳐지지 않는 것은 이 탓이 아닐까.
그렇기에 일종의 의심이 필요하다. 우리는 실제보다 자신을 더 좋게 인지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래서 원망을 품기 쉽다. 내 머릿속에 나는 덕수 같은 훌륭한 인물인데, 받아 마땅한 존경과 인정을 얻지 못하는 탓이다. 이를 피하려면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관점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관점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나에 대한 의구심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상대가 나를 대하는 태도를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적당한 자기 긍정적 편향은 삶에 필요하다. 생활은 갈수록 힘들어져만 가는데, 이렇게라도 자긍심을 유지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갈 용기를 내겠는가? 하지만 정부 고위 관료들이 이런 편향에 빠져버리면, 그건 심각한 문제다. 정부는 다른 어떤 조직보다 자신의 과실을 날카롭게 파악해야 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정부 고위층의 언행을 보면 정부 정책에 대한 의구심보다 일종의 ‘자뻑’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걱정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연말정산 때문에 분노하는 국민들을 보고 전반적 제도의 문제를 검토하는 대신 “이해가 잘되는 게 중요하다”라고 코멘트 하기는 힘들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대통령께서 국제시장을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 국민의례를 하는” 애국심을 보여주는 영화라 평하셨다 한다. 그렇게 볼 여지가 없지는 않으나, 너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대상을 보시는 것 같다. 혹시 국가 운영에서도, 정부는 잘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자란 애국심 때문에 떼를 쓴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닌지? 그런 ‘자뻑’은 마 부장, 그것도 자기가 오 과장인 줄 아는 마 부장이 되고 있는 신호 같은 것이니 잘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조원광 수유너머N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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