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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그래도 사람으로 남자!

등록 2015-02-15 20:17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지난해 1월에 회사를 그만뒀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회사와 번역 계약을 맺어 일하고 있다. 퇴사와 함께 4대 보험도 끝났다. 의료보험부터 해결하기 위해 움직였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경험상 집안에 정규직인 사람이 있으면 그 아래로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이번에는 동생 아래로 들어가기로 했다. 의료보험관리공단에 전화를 걸어 어떤 서류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무조건 지역가입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게 원칙이란다. 은퇴한 부모님께서도 지역가입자가 되셔야만 했다.

건강보험료는 생각보다 비쌌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나로서는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1년 새 3390원이나 올랐다. 국고가 지탱하기 어려울 만큼 비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이 나라에서 생존하는 게 녹록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예상은 곧 현실이 되었다. 지난해 말부터 온 나라에 세금 폭탄이 터졌다. ‘13월의 월급’이라 불리던 연말소득공제는 ‘13월의 세금공포’로 돌아왔다. 담뱃값은 거의 1+1 수준으로 올랐다.

내린 건 금리뿐인 것 같다. 은행이자가 낮으니 전세가 사라진다. 나는 또 이 전세난의 피해자가 되었다. 이번 달에 이사 문제가 터졌는데 전세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월세로 매달 내야 하는 돈이 소득의 거의 3분의 1 수준, 정말 입이 떡 벌어졌다. 전세가와 매매가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대출을 좀 받아 집을 사버리라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하마터면 내 꿈이 월세 두세 개쯤 놓는 월세수입자가 될 뻔했다. 부동산 부양 못할까 봐 정말 전전긍긍하는구나 싶었다.

<논어>의 ‘안연’ 편에 보면 노나라 애공이 공자 제자인 유약에게 흉년이 들어 국가 재정이 좋질 않다면서 세금 정책을 상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약은 소득의 10%를 세금으로 거두라 말한다. 애공은 소득의 20%를 거둬도 부족한 판에 어떻게 10%를 걷느냐고 어이없다는 듯 되묻는다. 그러자 유약이 말한다. “백성이 풍족하면 왕도 풍족한 것이고, 백성이 경제난을 겪는다면 왕도 가난한 거 아닙니까? 백성이 풍족한데 왕이 누구랑 경제난을 겪겠습니까? 백성이 죽을 맛인데 왕이 누구랑 넉넉하겠습니까?”

유약의 대답은 애공의 허를 찔렀다. 애공은 국고를 걱정했다. 세수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했다. 그러나 유약은 국가가 왜 존재하는지를 물었다. 누구를 위해 국고가 필요한지를 먼저 생각하게 한 것이다. 왕정시대에도 왕을 왕 되게 하는 존재는 백성임을 알았고, 그래서 왕의 스승들은 백성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삶을 먼저 안정시키라고 가르쳤다. 지금은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 이 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 나라의 주인인 ‘민주’의 시대이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이렇게 가난해져 가는가?

돈이 털리니 마음도 털린다.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다. 턱없이 높은 월세는 여유 없음의 증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서민을 향해 공감하는 마음을 잃은 정부 아래 살다보니 어느덧 나도 이웃을 향한 공감을 잃어간다.

‘정도껏’이란 말이 있다. 공감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정도껏’이 존재할 수 있는 것 같다. 현실이 우리에게 이웃을 보는 게 사치라 말해도 우리는 이웃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기어이 사람으로 남아서 다른 내일을 선택할 수 있다. 정부는 스스로 각성하지 않는다. 기어이 사람으로 남은 이 나라의 주인 우리가 그들을 각성시켜야만 그들은 변화된다. 끝내 사람으로 남자.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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