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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우리 독립하게 해주세요!/ 임자헌

등록 2015-03-15 18:51수정 2015-03-15 18:54

집을 옮기게 되어 부동산에서 갔다가 두 가지 장면을 봤다.

첫 번째 장면 : 어떤 노부부. 부동산에 들어오더니 대뜸 “○○아파트 20평대로 살 만한 거 있나?”고 물었다. “이사하시게요?” “아니 그냥 좀 사 두려고. 사둘 만한가? 누가 ○억○천만원에 팔았다던데?” “아니에요. 너무 높이 부르셨네요. 지금 그 가격 아니에요. 매매가는 별로 안 올랐어요.” 돈이 넘치도록 많은 분들 같지 않았고, 연세도 꽤 지긋해 보였다. 살기 위해 사는 집이 아니라 투자하려고 사두는 집이면 결국 자녀들 몫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장면 : 결혼을 앞둔 자녀와 그 부모. “이 집 정도면 신혼부부가 살기에 적당한데요.” 집을 보고 와서 부동산업자가 말했다. “작고 낡았어요. 마음에 안 들어요.” “아이구, 얘, 가격 차이가 얼만데?” “그래도 아까 깨끗하고 평수도 좀 되는 집으로 하고 싶어요.” “네 돈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내가 사주는 거잖니? 이걸로 하자.” 영 내키지 않는 기색이다. 결국 꽤나 더 비싼 집으로 결정했다는 후일담이었다.

성인이 되었다는 건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릴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성인이 된 20대가 벌 수 있는 돈은 참으로 뻔하다. 사람이 일상을 살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식주가 본인 힘으로 해결 가능할 때 비로소 독립할 수 있다. 의와 식은 어떻게 해보겠지만 주, 집 문제는 20대가 혈혈단신으로 사회에 나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속한다. 전체 취업 인구 중 대기업에 취업한 사람이 몇이나 되나? 일반적인 중소기업에 다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연봉으로 집을 장만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이다. 대학 등록금 대출이라도 받았다면, 거기에 자취하느라 매달 방값까지 나가야 한다면 암울한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이란 걸 알기에 부모는 내 자식이 주저앉을까봐 악착같이 힘닿는 대로 어떻게든 돈을 모으고 또 모은다. 그렇게 하는 부모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여기서 젊은 세대의 독립이 불가능해진다. 세상에 다치고 지쳤을 때 나를 먹여살려줄 유일한 곳인 부모의 품으로 다시 기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부모의 품에서 떨어지지 못하는 건 사회적으로 보면 새로운 세대가 여전히 구세대의 틀 안에 갇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더 나아가서 사회가 젊은 세대 특유의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바람으로 새로워지지 못한다는 뜻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식에게 진정으로 서럽지 않은 내일을 주고 싶다면 부모 세대는 자기 자녀에게 물려줄 재산을 모으고 늘리기보다 나라와 기업을 향해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라고, 기계에게 인간의 일자리를 내주며 내 수수료를 받아가지 말라고, 적절한 임금을 지불하라고, 제대로 된 고용형태를 제공하라고 사회에 먼저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을 끝내는 세상을 바꾸어 나의 자녀도, 너의 자녀도, 우리 젊은 세대 모두가 자기 힘으로 실패를 충분히 딛고 일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만들어 주는 게 훨씬 더 안전한 유산 아닐까?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암담한 내일에 힘들어하는 젊은 세대들의 상황이 개개인에게 ‘부모 잘못 만난 탓’이라는 한마디로 너무 쉽게 설명돼버리곤 한다. 너무 ‘사’(私)적이다. 민(民)이 주인인 사회라면 이것은 ‘공’(公)적인 질문이 되어야 한다. 독립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다.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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