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30년쯤 전, 미국의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파업과 시위에 나섰다. 하루 10시간을 훌쩍 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그들은 자신의 시간을 돌려받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요구했다. 이 사건은 5월1일 노동절의 유래가 되었고 그 후 20세기에야 8시간 노동은 노동시간에 대한 보편적 약속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은 비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시간으로 1, 2위를 다툴 만큼 장시간 노동이 일반화된 나라지만,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의 노동시간에 대한 규범이 있기에 그나마 장시간 노동이 억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는 아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자기 시간을 돌려받아야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한국의 초·중·고생들이다. 2010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 고등학생들은 평일 학습시간이 11시간에 가까우며, 일주일 학습시간은 약 64시간에 이른다. 초등학생도 주 45시간이 넘는다. 자연히 여가시간, 수면시간은 적다. 2013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로는 초·중·고생 중 60%가량은 평일 여가시간이 2시간 이하이다. 그 결과로 청소년들의 학업 스트레스는 세계 최고 수준, 행복지수는 바닥을 긴다. 과거 한 초등학생이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고 절규한 현실은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학습시간 문제는 ‘세계적’이다. 사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에서의 학습시간도 많은 편으로 총 학습시간은 오이시디 평균보다 훨씬 길다.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핀란드 등은 대개 늦어도 3시에서 4시, 이르면 2시쯤에도 학교 수업이 끝난다. 나라에 따라선 초등학교는 돌봄 기능 등을 하기 때문에 늦게까지 운영하지만 고등학교는 더 일찍 파하는 경우도 있다. 고교생이 될수록 학습시간이 급격히 늘어나는 한국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예능프로그램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에 출연했던 터키 출신의 에네스 카야는 “고등학생이 2시면 끝나서 집에 가야지!”라며 한국 학교의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노동과 학습은 동질의 활동은 아니지만, 쉴 시간이나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점에서는 학습시간도 노동시간의 문제와 별로 다르지 않다.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노동시간을 사회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필요했다면, 학생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도 학습시간을 규제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세계 평균 등을 고려할 때 적절한 학습시간 상한선은 하루 6시간, 주 35시간 정도라고 본다. 본인이 원해서 ‘시간 외 연장 학습’을 한다 해도 여기에 2~3시간을 더한 수준일 것이다. 내가 활동하는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에서도 최근에 ‘내 시간을 돌려줘!-학습시간 줄이기’ 운동을 하고 있다.
시간에 대한 권리는 곧 자기 삶에 대한 권리이다. 교육제도 속 학생들의 삶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면 공교육, 사교육을 가릴 것 없이 장시간 학습은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장시간 학습을 ‘교육열’이라며 미화하고 공부를 많이 할수록 좋은 일이라고 평가하는 ‘악습’은 그만두자. 경쟁과 불안의 논리 속에서 늘어나는 학습시간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줄여나가야 한다. 학습시간의 상한선에 대한 기준은, 노동시간에 대한 기준이 그러하듯이, 바로 현실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장시간 학습을 억제하는 장치가 되어줄 것이다. ‘8시간 노동’처럼 언젠가는 ‘하루 6시간 학습’이 학생의 인권을 위한 당연한 규범이 되리라 믿는다.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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