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봤다. 지구 반대편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에서 따와 지은 제목답게 사소한 변화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오락적으로 설명하는 방송이다. 눈길을 끈 것은 ‘부모가 야근을 하면 딸의 하이힐이 높아진다’는 예측. 야근이 잦으면 피로하고 무기력해져 부부간 싸움이 잦아진다. 이런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자녀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작은 키를 숨기려 하이힐을 신는다는 것.
왠지 그럴싸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요즘 울산과학대 일부 학생들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녀를 걱정하고 있다. 울산과학대. 고 정주영 회장이 울산공업학원이란 이름으로 설립하고, 한때는 정몽준 전 의원을 이사장으로 둔 대학이다. 이곳 청소노동자들이 300일간 파업 중이다. 최저임금 받던 노동자들이 생활임금을 요구한 것이 싸움의 시작이다.
대부분의 파견노동이 그렇듯, 실고용주인 대학은 관계가 없다며 뒤로 숨고 용역업체는 파업문제를 해결할 권한이 없다. 농성만 길어진다. 물도 전기도 끊긴 천막에서 예순 넘은 노동자들이 겨울을 지냈다. 그리고 지난 3일 사달이 벌어졌다. 총학생회가 주축이 되어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현수막과 소원리본을 뗀 것이다.
울산과학대 학생 자치단체 출범식이 있던 날이다. 행사를 마친 총학생회 임원들은 100여명의 학생들에게 포대자루와 가위를 나눠줬다. 가위로 현수막을 자르고 포대자루에 담으라 했다. 학생들은 해맑게 웃으며 장난치듯 현수막을 떼고, 청소노동자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그나마 총학생회 임원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그네들의 주장은 이랬다. ‘우리는 돈을 내고 대학에 왔다. 좋은 환경에서 수업 받을 권리가 있다. 청소노동자 농성과 현수막은 우리의 학습권을 침해한다.’
인생에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꼰대’ 같은 충고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걱정을 했다. 울산과학대 일부 학생들의 미래 자녀를. 원하는 대로 학습권이 보장되면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할 게다. 청소노동자들이 새벽같이 나와 쓸고 닦은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듣지만, 쾌적함이 누구의 노동인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청소노동자들은 투명인간과 다를 바 없는 시절로 돌아간다. 학생들에게는 타인의 노동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 의식도, 노동자로서의 자각도 필요 없다. 취업에 도움되지 않는다.
스펙을 쌓고 면접을 본다. 취업이 되면 회사와 일대일 성과연봉 계약을 맺을 게다. 연봉 3천~4천만원은 소수 대기업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겠지만, 괜찮다. 열심히 하면 된다. 생활임금을 요구하는 이도, 노동권을 주장하는 이도 없는 조용한 사회에서 나 개인만 열심히 한다면 얼마든지 대우를 받을 것이다. 야근도 하고 경쟁도 하고, 직무평가에 목을 맨다.
회사 안팎에 노동조건 향상을 말하고 정규직 일자리를 요구하는 이가 없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웃으며 떼어낸 현수막이 조용한 사회를 만들었다. 어느 날 나에게 불이익이 와도 누구도 요구하지 않는 조용한 곳에서 나 혼자 손을 들 수는 없다. 그저 일한다. 경쟁하고 평가한다. 노동을 통제할 권리가 나에게 없으니 업무강도는 높아만 간다.
피로하다. 짜증난다. 부부싸움이 잦고, 스트레스를 받은 자녀의 키가 자라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 그러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타인의 노동권을 묵살할 때, 내 자식의 하이힐은 몇 센티 굽일지를.
희정 기록노동자
희정 기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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