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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공부의 의미를 묻다 / 임자헌

등록 2015-04-12 19:24

내게서 경서 강독 수업을 들으시는 연세가 지긋한 수강생 한 분이 질문을 던지셨다. “사실 배우는 걸 좋아해서 이것 외에도 여러 인문학 수업을 듣고 있어요. 그런데 배우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막상 해보니 힘에 부치더군요. 공부해서 어디에 딱히 써먹을 수 있는 나이도 아닌데 왜 이리 열심히 수업을 듣나 싶었죠. 이런 걸 왜 배워야 하는 걸까요?” 대답할 말이 순간 생각나지 않았다. 이분은 대체 왜 이런 어렵고 실용적이지도 않은 공부를 할까? 다시 나는 내게 물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공부하나? 단지 직업이라서? 질문은 한 번 더 변했다. 대체 공부는 왜 해야 하나?

지난 10일 저녁 7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문화광장에 안산지역 고등학생 2000여명이 모여 세월호 참사로 곁을 떠난 단원고 친구들을 위해 1주년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거기서 마이크를 잡았던 한 학생의 말이 내 가슴에 박혔다. “어른들은 이제 그만 잊고 공부에 충실하라고 합니다. 도대체 저희에게 공부가 무엇이기에 저희에게 친구들을 잊으라고 하십니까?” 학생들이 초·중·고등학교에서 친구들을 잊는 한이 있어도 해내야 하는 그 ‘공부’라는 것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 나라에서 공부란 곧 직업교육을 뜻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직업이나 경력과 이어지지 않는 공부는 우리에게 낯설다.

그렇다면 우리는 효율적인 생산을 해내는 존재가 되기 위해 ‘의무교육’까지 받아야 하는 것일까? 학교 교육은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배움을 통해야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 때문에 교육이 의무이기까지 한 것이다. 인간은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다 알고 태어나지 않는다.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날 뿐이다. 그러니 학교에서 나와 남에 대해, 또 인간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욕망이 극대화된 사회가 어떻게 되는지 미리 살펴보아 내 욕망을 절제하고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타인의 아픔을 아파하고 타인의 기쁨을 기뻐하는 공감이 인간을 인간답게 해준다는 걸 배우는 것이다. 이것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다.

어른들은 공부의 의미를 잘못 가르쳐주었지만 추모제에 참석한 학생들은 모두 스스로 바른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조금만 마음의 긴장을 풀어도 인간은 절로 이기적이 된다. 공부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고 학교를 졸업해도 녹록잖은 삶 앞에서 주저앉기 십상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욕망과 이기심을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라는 말 속에 녹여 학생들에게 거리낌 없이 주입한다. 그러나 정말 어쩔 수 없는 현실일까? 사회는 인간의 작품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든 건 우리다. 인간이 바뀌면 사회도 바뀐다. 어른들은 학생들 하나하나의 삶은 물론 사회 전체가 가진 내일의 가능성까지 거세하고 있는 것이다.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곧 4월16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터졌던 날. 그날은 어쩔 수 없는 그저 그런 어른이 되어가던 나의 생일이기도 했다. 304명의 잃어버린 삶 앞에서 나와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 잘못된 공부가 키워낸 사람들이 타인의 삶을 앗아갔다. 그런 공부를 다시금 요구한다면 우리 사회는 또다시 누군가의 삶을 짓밟게 될 것이다. 학생들을 울게 하라. 그리고 지금, 또 앞으로도 오랫동안 나와 그대 역시 그 옆에서 울어야 마땅하다. 그 울음 속에서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는 내일이 올 것이다.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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