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에 켄 머리 남캘리포니아대 의대 교수가 실은 글을 보면 죽음이 소개돼 있다. 68살의 의사가 췌장암을 진단받은 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있는데, 이 의사는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수술은 물론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를 전혀 받지 않은 것이다. 암 진단 뒤 곧바로 일을 그만두고 가족들과 남은 시간을 보냈다. 많은 의사들은 현대의학의 효과와 한계를 알기 때문에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낼지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머리 교수는 다른 사례도 소개했다. 뇌로 전이된 폐암이 진단된 60살 사촌의 죽음이었다. 병원에서는 일주일에 3~5번의 항암제 치료 등을 받으면 넉달을 살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 사촌은 뇌 조직의 팽창을 막는 몇몇 알약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냈다. 평생 가 본 적이 없는 디즈니랜드에도 갔다. 이렇게 8개월을 지낸 뒤, 혼수상태에 빠져 사흘 뒤 숨졌다. 8개월 동안 그가 쓴 의료비는 20달러에 불과했다. 머리 교수는 미국의 한 연구에서 의사들을 상대로 조사해 보니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자신에 대한 치료 방침에 대해,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가족들에게 주문해 놓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심폐소생술 등을 하지 말아 달라는 등 많은 의사들이 죽는 과정을 미리 준비했다.
지난해 11월 뇌종양으로 투병하던 29살 여성이 이른바 ‘존엄사법’이 발효된 미국의 한 주로 이사해 결국 안락사를 선택했다. 외신 기사를 요약해 공급하는 <뉴스 페퍼민트>에 실린 글을 보면, 원래 의사들은 환자에게 해를 주면 안 되므로 조력 자살에 대해 반대하는 집단이지만 최근에는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 미국과 유럽의 의사 2만여명에게 물은 결과 응답자의 54%가 조력 자살 허용에 찬성한다고 답해, 4년 전 46%보다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조력 자살은 환자가 원해 의사들이 약을 투여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은 최선의 치료를 다 해야 한다. 하지만 치료가 불가능하면 인공호흡기를 꽂은 채 사망하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작별인사도 하고 죽고 싶은 환자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는 것이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가 쓴 책인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거나 인공호흡기 등을 사용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 인공호흡기를 꽂아 말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병상에 누워 있는 것이 환자가 죽음으로 가는 고통만 더 크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연명의료에 대해 환자의 자율성을 중시하자는 쪽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이다. 윤 교수는 최근 호스피스 관련 토론회에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진 환자가 연명치료 대신 질병의 고통을 덜고 남은 삶의 질을 높이는 호스피스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호스피스 시설, 인력 등을 크게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죽는 과정 자체가 고통이라는 것이다.
의사들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이별인 죽음은 모두 싫어한다. 하지만 맞아야 하는 삶의 일부로 생각하고 미리 준비한다. 이렇듯 나이 들었고 또 준비하고 있어도 슬픈 것이 죽음이다. 그런데 바로 1년 전 세월호에 탄 많은 고등학생들과 승객들이 죽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죽음이었다. 그들은 ‘곧 구조될 거야’라는 믿음 속에 죽어갔다. 죽음을 준비하는 의사들과 이들은 똑같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 죽음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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