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의 2014년 신어(새 낱말) 자료집을 보면 ‘센 표현’의 낱말들이 늘어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극혐오하다(아주 싫어하고 미워하다), 극호감(아주 좋게 여기는 감정), 개소름(심한 추위나 공포, 충격 따위로 피부에 돋아나는 소름) 등이 새로 등장했다. 맥덕(맥주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 삭스홀릭(양말 사는 것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닥눈삼(닥치고 눈팅 삼개월. 인터넷 게시판에서 새로운 회원은 닥치고 삼개월 동안 분위기를 파악해야 한다는 뜻) 등도 눈에 띄었다. 심멎(심장이 멎을 만큼 멋지거나 아름답다), 인생짤(그 사람의 인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잘 나온 사진), 광삭(빛의 속도와 같이 빠르게 삭제함) 등이 보였다. 우리 사회를 ‘일자리 절벽’ ‘재벌 절벽’ ‘창업 절벽’으로 소개하는 절벽계 낱말도 등장했다.
같은 자료집에 나온 건 아니지만, ‘개’를 접두어로 붙여 더욱 세게 표현하는 것도 최근의 언어 추세다. 개이득(큰 이득, 행운), 개고생(큰 고생) 따위가 그런 예다. 꿀벅지, 핵잼(매우 재미있다)과 같이 꿀과 핵도 센 표현을 만드는 데 쓰이고 있다. 개와 꿀을 함께 붙여서 ‘개꿀잼’이라고 강조를 두 번 하면 엄청난 재미라는 뜻이 된다. 요즘 청소년들이 ‘헐~’, ‘대~박!’ 단순한 두 낱말로 의사소통을 상당 부분 해결한다는 관찰 결과도 있다.
센 표현을 쓰는 이유는 인상을 강하게 남기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극단적인 언어는 때로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킬 수 있다. 세상일은 여러 측면을 고루 살펴봐야 할 때가 많은데, 극단적인 언어가 인식의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이 극단적인 언어를 남용하는 것은 더욱 문제다. 정치인은 무대에 올라 역할 연기를 함으로써 국민들의 본보기가 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한테서 금품을 받았다는 논란 와중에 목숨 발언이라는 ‘어록’을 남겼다. 그는 얼마 전 국회 대정부질문 자리에서 “만약 이완구가 망인으로부터 돈 받은 증거가 나온다면 제 목숨이라도 내놓겠습니다.” “고인이 저에게 준 육하원칙에 의해서 증거가 나오면 제 목숨과도 바꾸겠습니다”라고 발언했다.
총리가 자신이 연루된 수사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말한다는 것은 당연히 부당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표현 수법이 너무 극단적이고 저급하다는 점이다. 성 전 회장이 목숨을 끊으면서 불거진 논란 와중에 이렇게 말하고 나서니 흉하기 짝이 없다. 결백함을 강조하겠다는 의도 같긴 한데, 잘못 사용한 과장법 때문에 의도를 되레 의심하게 한다. 목숨이라는 낱말은, 가령 목숨을 걸고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밝히겠다거나 할 때 써야 한다. 그래야 생물학적인 목숨을 건다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을 단호한 의지를 갖고 추진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겠는가. 이 총리는 정치인으로서 기본기인 수사학(레토릭)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누리꾼들은 이 총리의 발언을 활발하게 패러디했다. “목숨 걸고 한잔하자”거나, “목숨은 반송할 테니 직을 내려놓아 달라”는 말들이 그것이다. 성완종 전 회장이 비타500 상자에 3000만원을 담아 전달했다고 한 데서 비타500이 아니라 비타3000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래 가지고서야 진짜 비타500 상자를 들고 거래처를 찾아갈 수 있겠느냐는 장탄식도 참 재미있다. 이 총리 발언으로 삭막해진 국민 언어생활에 그나마 누리꾼들이 활력소를 제공했다.
고대 아테네 시민들은 돈을 주고 소피스트한테 말하기 공부를 했다. 광장의 민회에서 여론을 설득하기 위해 기본기를 갖추고자 한 것이다. 이완구 총리가 정치생명을 길게 이어갈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정치를 계속하고자 한다면 차제에 말 공부를 좀 하시는 게 어떨까 한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박창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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