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휴대폰 때문에 서비스센터에 갔다. 고쳐도 또 고장이 생길 수 있다며 직원은 두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똑같은 모델을 다시 사든가, 신모델을 사든가. 신모델은 얼만지를 물었다. 보통 고객들은 신모델을 사죠. 직원의 대답에, 가격을 다시 물었다. 가격면에서는 신모델을 사는 게 나은 거라며, 70만원대부터 시작된다고 한 박자 늦게 대답을 들었다. 더 많이 지갑을 여는 쪽으로 나를 유도한다는 걸 겨우 알아채고서야 똑같은 구모델을 다시 사는 걸 선택했다. 그제야 고장에 대비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을 확인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다른 담당자와 전화로 연결이 되었다. 보험 만료일과 배상금과 그에 따른 구비서류와 동의해야 할 조항들을, 매우 빠른 목소리로 아주 많은 정보를 설명해주었다. 전달받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전화를 끊고 나자 절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조금의 자기부담금만 내면 된다는 걸 겨우 기억했다. 자칫하면 70만원이 넘는 돈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결제할 뻔, 다행이라 여겼다. 책자나 문건으로 보험 관련 안내를 다시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약정을 차근차근 읽고 차분히 이해할 권리가 고객에겐 없었다. 난감한 채로 잠시 있자니, 저쪽에서 다른 고객이 또 다른 이유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유니폼을 깔끔하게 입고 고객을 만나는 이 직원들 뒤에 도대체 어떤 시스템이 있는 걸까. 어떤 목적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걸까. 무엇 때문에 이렇게 복잡해져 버린 걸까.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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