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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의심의 끝 / 김지석

등록 2015-05-20 18:34

존 르카레가 쓴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1963)는 스파이 소설의 고전으로 꼽힌다. 영국 정보부는 동독 내 첩보망이 무너지자 동독 정보부의 핵심 간부를 제거하기 위한 공작에 들어간다. 한 스파이가 조직에서 버림받고 폐인 생활을 하며 폭행으로 감옥에도 간다. 위장된 배신자 역할이다. 예상대로 동독 쪽에서 그에게 접근하고 그는 동독으로 가서 심한 심문을 받는다. 제거 대상으로 삼은 간부에게 불리한 정보가 치밀한 방식으로 그의 입에서 나오고 영국은 목표를 달성한다. 하지만 주인공도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제목과는 달리 그는 추운 나라에서 돌아오지 못한 스파이가 된다.

상대편 권력자의 의심을 증폭시켜 유능한 부하를 제거하게 만드는 기술은 전쟁의 역사만큼 오래됐다. <손자병법> 용간(간첩 운용) 편에 나오는 사간(死間)이 그런 사례다. 그럴듯하게 만든 거짓 정보를 상대 쪽 핵심부에 전한다. 사간은 그 정보의 진실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지만 결국 죽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사’간이다. 좀 더 고차적인 방법도 있다. 고위 권력자가 상대편 사절에게 실수하는 척하며 유능한 적장의 안부를 묻는 등의 방법으로 그와 내통하고 있음을 내비친다. 이런 ‘우연’이 겹치면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진다.

2013년 12월 숙청된 장성택 북한 노동당 행정부장은 외국에서 인기가 있었다. 그는 대표적인 중국통이었고, 한국·미국 등도 북한의 개혁·개방과 관련해 그를 주목했다. 이런 분위기 자체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의심을 키웠을 법하다. 최근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월 펴낸 회고록 때문에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원동연 제1부부장 등이 조사를 받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 부장은 남북 접촉에서 ‘(남쪽의 대북 지원과 관련해) 그대로 가면 죽는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과거 유능한 스파이가 한 역할을 지금은 언론이나 책 등이 본의 아니게 떠맡는다. 물론 애초 의심이 없다면 ‘의심의 끝’도 있을 수가 없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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